"우리 내일 독도에 가보지 않을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곱게 늙어가기>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했던 친구가 내가 묵는 실버타운으로 찾아왔다. 내가 법정에서 그를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가 묵는 방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내게 물었다.
  
  “너는 버킷 리스트가 뭐냐?”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랬다. 일찍부터 돈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했다. 영혼의 울림이 있는 사람들만 만나려고 했다. 그런 걸 뒷받침할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했다. ‘희랍인 죠르바’를 읽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출세와 돈을 포기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 편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그런 내가 위선이 아닐까 항상 의심했다. 정말 내가 추구하는 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일까도 고민해 보기도 했다.
  
  “너는 버킷 리스트로 뭘 하고 싶은데?”
  내가 친구에게 되물었다.
  
  “법조인이었던 아버지 뒤를 이으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오로지 공부에 매진했지. 대학에서는 고시공부를 하느라고 다른 책들을 별로 못 보고 판사가 됐지. 판사가 돼서는 삼십대에서 오십대 부장판사로 지낼 때까지 사건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쓰느라고 다른 걸 못했어. 판사끼리도 프라이드와 경쟁의식이 있어서 남보다 판결문을 못 쓴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거든. 기록을 집으로 싸들고 와서 한밤중에 일어나 고시 공부하듯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썼지. 그렇게 오십대까지 가고 변호사가 돼서는 돈을 버느라고 육십대를 훌쩍 낭비한 거야. 칠십대로 들어서는데 이제는 나를 찾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곱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버킷 리스트를 만들면서 나를 찾아가고 있어?”
  “요즈음 차 위에 텐트를 싣고 바닷가나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 파도치는 밤바다 가의 텐트에 걸어놓은 노란 불빛이 비치는 램프 아래서 조용히 명상하는 듯한 모습이 아름다워. 그리고 젊어서 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배우느라고 부지런을 떨어. 요전에 작은 화실에 간 적이 있는데 화가기 나를 보고 흰 도화지를 주면서 내 손을 그려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대충 그려서 줬더니 나보고 원래 내 속에 달란트가 있어 보인다고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어려서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눌려서 그랬지 초등학교 때 신문사에서 하는 전국 어린이 사생대회에 나가서 특선을 여러 번 했었어. 교장선생님이 전교생 앞에서 미술상장을 내게 주곤 했었지. 그게 기억에 떠오르면서 내가 잠재적으로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 않나 생각했어. 그래서 그림을 시작했어. 색소폰을 배우고 드럼도 배워. 활을 쏘는 것도 익히고 있어. 하지 못한 것들을 배우고 또 배우는 거야.”
  
  “그리고 또 뭐를 하는데?”
  “봉사활동이야. 그동안 쪽방촌 아픈 노인들에게 무료 도시락배달을 하다가 요즈음 다른 곳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어. 서울역 앞 무료급식소인데 노숙자들 여러 사람들이 밥때가 되면 와서 먹어. 그때 내가 하는 일은 가위를 들고 밥 먹는 사람들 옆에 가서 돈까스 소스가 든 비닐봉지를 잘라주는 일이야. 소스 봉지가 미끈거려서 손으로 찢어지지 않을 때가 많거든. 다가가서 미소를 지으며 ‘잘라드릴까요?’ 하고 말을 걸어주는 거지.”
  
  어떻게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곱게 늙어갈 수 있을까.
  
  젊은 시절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책을 읽거나 바둑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워 보였다. 지나 보면 모든 게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놀이같이 허망하다. 늙음이라는 파도가 밀려오면 다시 고운 모래 뻘이 된다. 남보다 몇 년 빨리 승진하고 어떤 지위를 얻은 것도 놀이를 끝낸 아이와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모든 걸 비운 마음으로 조용히 바다를 보면서 파도가 하는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듣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때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가자는 노래가 유행했었지? 나 얼마 전에 동해에서 고래를 봤어. 정말 고래가 있더라구. 우리 내일 독도에 가보지 않을래?”
  
  나는 지금 독도로 가는 배에 있다. 흰색을 엷게 칠한 듯한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회색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 2022-08-07, 17: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