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아들과 우리는 처음부터 똑같지 않았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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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 사십대 중반쯤이었다. 어느 날 법정에서 돌아오니까 그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요즈음 아이들 말로 하면 ‘짱’이었다. 그는 재벌집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놀았다. 그는 학교를 졸업 후에도 재벌가와 인연이 되어 그 기업에 들어가 잘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세일즈 맨이 되어 동창들을 찾아다니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나도 알바로 책 월부장사를 잠시 해봤다. 그게 얼마나 힘이 든지 알고 있었다. 찾아온 그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어서 오게. 아직 점심 안 먹었지? 같이 밥 먹으러 가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를 데리고 사무실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수육 한 접시와 냉면을 시켰다.
  
  “그래 어떻게 지냈나?”
  내가 그의 앞에 놓인 잔에 육수를 부어주며 말했다.
  
  “나 같이 복 없는 놈은 맨날 이 짓거리지.”
  “어떤 물건을 가져왔어? 말해 봐, 밥 먹기 전에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사게.”
  
  물건부터 먼저 사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얼굴이 환해지면서 가지고 온 카탈로그를 내놓았다. 세계여행 비디오 테이프와 전집류였다.
  
  “나는 한국문학전집이 필요해. 나도 읽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도 읽히려고.”
  “어문각에서 나온 한국문학전집이 있어. 내용이 좋아.”
  
  “그래 그걸로 할게. 그런데 좀 깎아 줘. 그리고 월부로 갚게 해 주면 안되나?”
  “그래 십퍼센트 깎고 십팔개월로 나누어 지불할 수 있도록 하지.”
  
  그를 동정해서 사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물건을 감사하면서 사고 싶었다. 그런 태도가 그를 떳떳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기분 좋은 얼굴이 되었다. 그의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일즈를 시작할 때 말이야. 용인에 있는 의사 친구를 만나 물건 하나 팔기 위해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털털거리면서 갔었어. 그런데 냉정한 표정으로 다음에 보자고 하더라구. 저무는 해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슬프더라. 분명히 내가 파는 물건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찾아간 건데 말이야. 그리고 또 어떤 동창들은 내 물건 하나 사주면서 뒤로는 저 새끼 고등학교 때 공부 안하고 빌빌거리더니 기어코 사회에 나가서도 평생 친구 찾아다니며 월부 물건이나 강매한다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면 목구멍에서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어.”
  
  그의 서러움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따뜻하고 호쾌하게 책을 사 주던 사람에 대한 감사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런 태도를 취하고 싶어 얼른 전집을 사준 것이다. 그가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이가 사십이 넘어가니까 이상할 정도로 따뜻해지는 걸 느껴. 이제는 찾아가면 너같이 스스로 알아서 물건들을 사 줘.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야. 그리고 그럴수록 이 짓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가 못난 놈인 걸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거야. 앞으로는 친구들이 진짜로 원하는 걸 알아 가지고 가서 팔아야겠어.”
  
  우리는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갑자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네가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됐다는 게 이해가 안 가. 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성적이 베스트 텐에 들던 아이들이었잖아? 그런데 너는 나같이 성적이 나빴잖아?”
  
  그는 중학 시절 내 성적이 바닥에 가까웠던 걸 기억하는 것 같았다. 전체 학생의 석차를 인쇄해서 벽에 붙여놓던 시절이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나와 같이 어울리던 그 친구 말이야. 나하고 똑같이 놀았는데 그 친구는 대기업 회장이 되고 나는 이렇게 초라하게 됐어. 그 친구와 내가 뭐가 달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이봐 친구, 부잣집 아들과 우리는 처음부터 똑같지 않았어. 똑같이 검은 교복을 잠시 입었을 뿐이야. 같지 않음을, 불공정을 받아들여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부자 아버지라는 반석 위에서 놀 때 우리는 허공에 걸린 외줄 위에서 걷고 있었어. 나는 외줄이 바위가 아닌 걸 자네보다 조금 빨리 알았다고나 할까.”
  
  나는 돌아가는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2022-07-16, 09: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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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2-07-16 오전 9:40
한번 사주면 오고 또오고 끝네 사이가 나빠질때까지 계속 되기도 한다는거
자신이 못살게 군건 잊어 버리는 사람이 너무 흔하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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