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대가(代價)도 반환청구할 수 있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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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의 위선사회>
  
  오후 세시 삼십분 나는 그 남자와 함께 법원의 1009호 조정실로 들어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여판사와 그 여자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의 의뢰인인 남자는 유부녀인 그 여자와 불륜 계약을 맺고 은밀히 동거했었다. 사랑으로 시작한 그들의 불륜이 소송으로 끝맺음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반하고 몰입했다던 그 여자는 은은한 비둘기 색의 고급 명품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달걀형 얼굴에 청순미가 도는 느낌이었다. 남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미인이었다. 여판사가 먼저 그 여자를 보고 물었다.
  
  “같이 살아주면서 얼마를 받았어요?”
  그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대략 삼억 원쯤 되는 것 같아요.”
  
  “그 돈은 얼마 동안 살아주는 데 대한 대가였나요?”
  “일 년 정도요.”
  
  “그 액수면 좀 비싸지 않은가?”
  여판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매춘의 대가가 법대 위에서 당당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판사가 비싸다는 말에 그 여자가 즉각 이렇게 반응했다.
  
  “저는 대학을 나와 국회의원 여비서도 하고 사업도 한 커리어 우먼입니다. 그리고 다른 경력도 있습니다.”
  
  매춘에도 학력 경력이 좋으면 명품으로 취급이 되고 가격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하기야 미녀 탤런트에게 재벌회장이 백지수표를 줬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그 여자가 말을 계속했다.
  
  “헬스클럽에서 만난 저 남자가 저와 같이 살자고 하면서 한 달에 팔구천만 원은 보장한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준다고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유부남과 불륜 계약을 맺고 돈을 받는단 말인가요?”
  여판사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 무렵 남편이 월급을 가져다 주지 않았어요. 남편과 가정불화도 있었구요. 저 남자가 그 사실을 알고 나보고 만나자고 했어요. 돈은 충분히 준다고 했어요.”
  
  “한 달에 팔구천만 원씩을 그냥 준다고 했나요?”
  “네 그냥 준다고 했습니다. 각서도 써줬구요.”
  
  이번에 여판사는 내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네 저 여자 말대로 같이 사는 대가를 충분히 줬습니다. 그 외에 BMW와 보석을 사 준 금액이 사억 오천만 원이 넘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 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냥 준 게 아닙니다. 그건 도로 찾아야겠습니다. 시가로 치면 이십억이 넘습니다.”
  
  여판사는 그 말을 듣고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아파트도 절대 줄 수 없습니다. 저한테 모든 걸 준다고 했던 남자입니다. 제가 특히 괘씸하게 생각하는 건 저 남자가 나와 같이 살자고 해놓고는 뒤로 외국에 있던 본처를 귀국시켜 데리고 사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본처가 사는 그 아파트 옆에 똑같은 아파트를 사달라고 한 거죠.”
  
  나는 그 여자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박하게 사는 서민들이 그들의 불륜과 거액의 대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불륜의 대가로 준 것은 반환청구가 불가능했다. 그 여자가 승리했다. 돈이 많은 그 남자는 당당한 태도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돈을 벌어서 십억짜리 수제 포르쉐를 주문해서 그걸 타고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수십억짜리 별장을 샀다가 버리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면 자기 돈 가지고 명품으로 보이는 미녀를 데리고 사는 게 뭐가 다릅니까?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나 가치관도 사람에 따라 다른 거 아닙니까?”
  
  그런 식의 사고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니까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그가 치사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십 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면서 보고 들은 악취 나는 사회 하수구의 모습은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란다. 결혼제도가 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속에서 일부일처제는 이미 실종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차라리 법적인 싱글로 지내면서 이성과 사귄다는 말로 프리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수구 옆에 사는 직업을 가지고 그 악취가 배었기 때문에 편견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마광수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발표했다가 구속이 됐었다. 그 소설의 내용은 거의 예전 화장실의 음란한 낙서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교수가 그런 글을 썼다는 데 대해 여론이 들끓고 법의 단죄를 요구했다. 그가 자살하기 전 우연히 만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즐거운 사라'는 여성의 성적 해방을 솔직하게 얘기한 건데 왜 법이 나를 감옥까지 보냈는지 모르겠어. 담당 판사가 일부일처주의가 무너져 가는 건 알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 문학이 법의 단죄를 받으면 포르노는 왜 안 받죠? 자유롭게 간통을 하고 그걸 책으로 내서 자랑한 여성 탤런트는 왜 법이 관여하기를 포기하죠?”
  
  마 교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 속 아이같이 임금님의 수치를 솔직히 얘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2022-07-15, 08: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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