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평화론적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 같은 아베의 죽음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자유평화와 번영 위에서 비극을 맞이하는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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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평화론적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 같은 아베의 죽음
  
  누구나 문득 삶, 죽음, 이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을 겁니다. 오늘 저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삶은 시간과 공간, 기억과의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곳,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인간이라는 동물의 기억이라는 기능으로 존재하지요.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병든 노모의 모습이 몹시도 슬픈 건 한 인간과 그 기억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알고서이기도 할 것입니다.
  
  모든 죽음은 그 자체로 애석합니다만 인간은 가까이 사는 모르는 이들보다는 멀리 있더라도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한 죽음에 더욱 안타까워하게 마련입니다. 엊그제 아베 신조(倍 晋三) 일본 전 총리가 떠났습니다. 허망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만 저는 동양평화론적 관점에서 그의 죽음이 마치 그리스 비극 같았습니다.
  
  아베라는 인물은 일본의 유명한 정치 가문에서 자랐고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前 일본 총리가 아베 씨의 외조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정치 가문은 한국의 근현대사와도 밀접합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은 이 점이 곧 동양의 자유평화와 맞물렸던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 비극 운운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듯 한국인에게 일본이라는 존재는 다양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중 다수는 사실과는 먼 그릇되고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형성된 부정적 의미라고 봅니다. 그런 관념과 좌경이념에 기인한 매스컴의 선동 등으로 아베라는 인물은 그 외조부에 이어 우리 일각에서 ‘일본 극우의 상징’, ‘일제 군국주의 부활’ 따위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든 저는 아베 전 총리가 일본의 번영과 세계 자유진영의 평화를 지탱하는 데에 중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史家(사가)들이 역사의 悠久(유구)함을 어떤 기준으로 삼는지 모릅니다만 긴 인류역사 측면에서 보면 옛적 황산벌에서의 저 비장한 전투도 그리 멀지 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때 이 땅에서 백제와 신라는 한참을 다투었지 않습니까. 고구려와 신라가 다투기도 했고 그러다가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였던 그 三國(삼국)이 합쳐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조선과 일본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다들 아시듯, 제국주의가 된 일본은 미국과 격렬히 싸우기도 했습니다. 일제는 조선의 후신 대한제국을 36년간 통치하다가 미국의 원폭으로 한반도를 내려놓고 한동안 신음하였습니다. 조선이 성리학적 이념으로 鎖國滅亡(쇄국멸망)하고 말았다면 일제의 경우 英美(영미)의 도움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번영하다가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잘못된 길을 가 패망하였습니다. 영미와 대척하는 파쇼체제의 독일, 이탈리아와 손을 잡은 탓입니다. 이후 일본은 다행히 제국주의의 길을 버리고 다시 미국과 손을 잡고 자유진영의 길을 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깊게 느낀 세계는 2차대전 이후 대규모 전쟁은 피했습니다. 과학기술 발달을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으로 자유진영 개인들의 삶은 윤택해졌습니다. 그러나 공산, 사회주의 세력과 자유 진영 간의 대치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근래 러시아, 중국의 군사적 발호와 우리의 남북분단이 이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세계 전쟁은 무력 충돌보다는 경제를 바탕으로 한 무역 전쟁이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각국 내부의 체제수호 의지와 국민적 이념무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진영에서는 배가 부르기 시작하자 기존 체제에 불만을 가지는 세력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수주의의 내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태어난 시대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록 군국주의 일본의 고급 관료를 지냈지만 제국주의의 문제점과 공산세력의 위협,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유진영 질서에 대한 현실 이해에 정통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의 일본의 신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방파제가 한반도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일국교정상화 의지에 朝野(조야)로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안보이익에 일본이 부응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일본 자유평화의 최일선 보루라면 일본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버팀목입니다. 이른바 한미일 삼각동맹, 태평양 세력 간의 협력은 다름 아닌 자유평화 유지인 것입니다.
  
  보수주의는 원래의 체제나 이념을 안정적으로 수호하려는 것이 본질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한일 양국의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유 그리고 이것에 기반한 평화를 추구합니다.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든 급진주의 세력 혹은 좌경이념을 바탕으로 한 세력은 ‘改革(개혁)’ ‘革新(혁신)’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보수주의를 흔듭니다.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의 ‘革’은 사회주의 지향성을 띱니다.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고 따라서 오늘날은 보수주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아베 전 총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에서의 6.25 전쟁 휴전 후 태어났습니다. 그의 성장기는 일본의 보수주의가 가장 위협받을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혈연적으로도 밀접하다는 인식을 지녔었고 한일 양국이 서로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의 보수주의가 굳건해야 자유평화 유지와 번영이 지속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베 가문의 철학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념적 소신은 일본의 자유와 평화를 지탱하려는 힘을 지녀야 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베 가문의 신념은 메이지 유신 세력의 기질, 일본의 민족적 기질인 武士道(무사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무사도는 우리네 신라의 尙武(상무) 정신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倭(왜)와 손잡았던 백제가 패망했고 이후 일본의 무사도가 가다듬어진 것으로 볼 때 신라의 상무 정신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상당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한 신라의 상무 정신은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쇠퇴했다가 사실상 박정희에 의해 부활했습니다. 그 박정희는 한반도에서 5천 년 가난을 물리쳤고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근본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신라의 상무 정신과 박정희의 기질은 한국 보수주의를 태동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등장한 전두환 정권 역시 상무 정신을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였습니다. 일본 보수주의의 본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 康弘) 전 총리도 전두환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미국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구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원동력은 결국 강력한 보수주의와 경제발전에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보수주의 수호는 경제발전은 물론 결과적으로 동양의 자유평화와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60년대의 일본의 막후 세력은 2차대전 후의 패전 쇼크와 거세된 무사도에 대한 무의식적 향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군사정변을 일으켜 홀연히 등장한 젊은 박정희 세력을 보며 왠지 ‘돌아온 메이지 지사(明治維新 志士)’, ‘우리의 마지막 사무라이’라는 느낌도 가졌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박정희는 혁명과 국가발전, 보수주의를 태동시키고 떠났습니다. 믿었던 부하에게 당했지만 근본 원인은 보수주의를 위협하는 끊임없는 여론 공세에 김재규가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박정희의 마지막은 말할 수 없이 허망했지만 비장했고 瀟灑(소쇄)했습니다.
  
  보수주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가 터 닦은 경제발전 위에서 김일성 정권이 아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 두 정권이 좌경적 길을 가고 한국 보수주의가 위협받자 국민은 박근혜를 불러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그는 보수주의 수호 염원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유세 도중 얼굴에 칼을 맞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자유평화와 번영 위에서 비극을 맞이하는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요. 기시 노부스케도 칼에 피습당한 바 있습니다. 역시 2차대전 戰犯(전범)이라고 매도하는 여론이 피습의 상당한 기저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아버지 아베 신타로에 이어 아베 전 총리는 확고한 보수주의 이념과 親韓(친한)적 사고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아베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위안부 문제를 대승적으로 합의, 해결하고자 하였고 이는 실은 대를 이은 한일우호증진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의 재임 시절 한일 양국의 경제는 안정적이었고 미국과의 관계도 순탄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는 自國(자국) 지식인 계층과 언론으로부터는 인색한 평가를 받았지만 저변의 생활인들로부터는 강한 지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거나 대항하는 국내 언론과 정치세력에 의해 탄핵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맞게 된 것입니다. 아베 전 총리 역시 유세 도중 길에서 허망하게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그에 대한 부정적 여론 공세가 범인의 범행 동기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별세 소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흉탄에 돌아가신 일이 떠올랐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습당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자유평화에 가장 헌신한 이들이 그 평화 위에서 극우로 매도당하고 또 허망하게 떠난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이 이렇게 숙명적일까요.
  
  비록 이웃 나라 정치인이었지만 저는 아베를 성원하였습니다. 그의 보수주의적 신념이 한미일 삼각동맹과 동양의 자유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회복하기를 내내 바랐지만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살아 있는 그를 볼 수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애석합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그런 그의 별세가 흔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사망 소식보다 제대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 2022-07-11, 05: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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