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영 변호사의 '50년 법률사무소'
"法臺 위에서 단죄하는 것보다 가난하고 약한 자의 옆에 서서 무엇인가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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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게 분명하다. 이십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여든다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나이까지 무교동 구석에서 작은 개인 법률사무소를 하고 있었다. 오십 년동안 법률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그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었다. 그의 사무실은 누렇게 변색이 된 책들이 바닥에서 천정까지 쌓여 있었다. 해방 무렵 그가 변호사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던 책들도 섞여 있었다. 합격하면 모두가 판검사가 되고 높이 높이 올라가려고 하던 시절 그는 굳이 변호사를 택했다. 더러 그런 사람이 있었다.
  
  “높은 법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단죄하는 것보다 가난하고 약한 자의 옆에 서서 무엇인가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소.”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을 위선으로 오해할 수 있어도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판검사의 일이 싫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이십대 후반 군사법원에서 판사 노릇을 몇 년 한 적이 있다. 나는 재판 때마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앞에 놓은 수험생처럼 끙끙 앓았다. 석방시키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게 옳은지 도무지 결정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선고 순간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판단 불가능이라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 유체같이 수시로 형태를 바꾸는 것인지도 그때 알았다.
  
  사건기록을 읽고 나쁜 놈이라고 단정한 경우가 있었다. 그에게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아무도 모르게 수첩에 기호로 그 형량까지 메모해 놓았다. 어느날 그의 변호사가 찾아와 변론을 했다. 이미 고정관념을 가진 나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오히려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 변호사가 두 번째로 판사인 나를 찾아왔다. 진지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변호사가 세 번째 찾아와 진지하게 사정을 얘기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판사보다는 직접 당사자를 만나는 변호사가 그 사건의 인물과 이면을 더 많이 알기 마련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백팔십도 변했다. 수첩에 적어놓은 걸 지워버리고 석방이 되는 판결을 선고했다. 그 변호사에게서 집요하고 진심인 변론은 법관의 마음을 바꾸는구나를 배웠다.
  
  나는 법관으로는 아예 부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사건과 마주쳤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여러 명을 죽인 살인범이었다. 그래도 막상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하필이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하기 싫었다. 책임이 무거운 그런 일들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이었다.
  
  내가 만난 노 변호사도 아마 그런 심정이 이면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십년 개인법률사무소를 운영해 온 유신영 변호사 그는 4·19 혁명 때 부정선거의 원흉을 수사하라는 특별검사로 추대됐지만 그 자리를 사양했다. 그 다음해 법관으로 추대됐지만 또 거절했다. 그가 찾아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를 허가받은 도둑놈이라고 세상이 비난하죠. 그건 과욕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내 경험으로 변호사의 본분에 충실해도 생활에 지장을 받은 적은 없어요. 또 다른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말이죠. 변호사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부당한 권력과 싸우는 시대정신이나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말이요. 한번 돈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변론을 해 줘봐요. 억울한 사람에게는 진실을 찾아주고. 그런 변론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게 아닐까. 한번 착수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활비로 돌려줘 봐요. 자기가 낸 돈이면서도 엄청나게 고마워하지. 거기서 받는 기쁨이 착수금 열 배쯤 되니까 한번 시험해 봐요.”
  
  아버지보다 더 나이먹은 팔십대 중반의 노변호사를 보면서 나는 산 속의 바위 틈에 홀로 핀 난초를 보는 것 같았다. 은은한 그 향기가 백리도 더 가는. 나도 변호사등록을 한 지 사십년에 다가왔다. 어쩌다 사건을 하더라도 그 노변호사같이 오십년을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 2022-07-10, 12: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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