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도 영원히 싸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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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신학을 공부한 성격이 특이한 분이 있다. 덩치가 왜소하고 착해 보이는 데 속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그는 목사가 되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덩치가 우람한 근육질의 주지 스님을 나의 법률사무소로 데리고 왔다. 그 스님도 불같은 성격 같았다. 대형사찰의 유명한 스님들이 도박을 하는 걸 보고 참지 못하고 그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불교종단에서 그의 주지 자격을 박탈했다.
  
  그 주지 스님의 소송을 맡았었다. 종단의 마당으로 가서 덤벼든 그에게 몇 개의 소송이 걸렸다. 몇 개 소송의 선임료로 오천만 원을 책정하고 목사가 되려던 분이 스님 대신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연대보증을 섰다. 일년 후 소송이 모두 끝이 났다. 스님이 찾아와서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독한 욕이 엄청나게 적혀 있었다. 목사가 되려던 분이 스님에게 보낸 것이다. 둘 사이가 원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왜 성경을 읽고 불경을 공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다. 얼마 후였다. 목사가 되려던 분이 다시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걸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다른 변호사에게 자기의 사건을 선임했다. 판사 출신의 그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알려진 싸움닭이었다. 어떤 싸움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아 싸우는 무서운 성격이었다. 일년이 지난 어느 날 싸움닭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사람 참 이상해요. 선임료 받을 게 백만 원이 남아서 내라고 했더니 엄 변호사는 오천만 원도 받지 않았는데 뭘 그걸 가지고 내라고 하느냐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구. 이 기회에 돈 떼먹는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 하겠어. 돈을 내지 않고 적당히 지내던 거지근성을 없애주려고 해요.”
  
  변호사인 그는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년 후에 목사가 되려던 그가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꿩 잡는 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른 싸움을 본 적이 있다. 목사와 종교잡지 기자가 싸움이 붙었다. 나는 목사의 변호사였다. 젊은 기자는 아버지뻘 되는 나이의 칠십대 중반의 목사를 한없이 약을 올리고 조롱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현실의 법을 악용하는 데도 능숙한 것 같았다. 목사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유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도저히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 기자를 두들겨 패구 감옥에라도 들어가야 하겠어요. 그래도 목사가 되기 전 젊었을 때는 나 싸움을 잘했어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구요. 내 앞차기 한방이면 그 젊은 놈 바닥에 나가떨어져 기절해버릴 겁니다.”
  
  나는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들어 주었다.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경찰서로 끌려가는 중입니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 놈을 발로 찼어요. 그런데 이놈이 내 발길을 받고도 꺼떡도 하지 않더라구. 그러면서 사진기를 꺼내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를 촬영하고 있더라구요.”
  
  그는 악마에게 끌려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목사와 스님 변호사가 분노해서 스마트 폰으로 욕을 날리고 소송을 하고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를 모욕하는 사람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원한을 품고 세월이 흘러도 그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어리석어 보여도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옥에서도 영혼들은 분노해서 그렇게 영원히 싸울지도 모른다.
  
  나는 주위에서 성령이 스며 들어와 그의 영혼을 바꾸어 버린 믿음의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분노는 물거품같이 스러져 버린 것 같다. 노해도 순간일 뿐이다. 그들은 노하려고 해도 노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게 진짜 믿는 사람이고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지는 게 평화를 얻는 방법이 아닐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그건 지는 게 아닐까.
  
[ 2022-06-07, 16: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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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2-06-07 오후 10:35
배신과 저주 음모와 모략이 목사와 스님들의 정체인거 같습니다
이사회는 들어가 보면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듯 합니다
엄상익 님은 그런 사회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분이십니다
부디 그 마음이 더러운 무리들의 추악함에 쓸려 나가지 않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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