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書(낙서) 최후의 날’ 그로부터 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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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書(낙서) 최후의 날’은 1975년 7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R 선생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R 선생은 1987년 1월 작고했지만 선생이 남긴 문학적 업적은 후세 맑고 향기로운 여운을 남겼다. 각종 문화예술단체에서 회장단 선거를 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추태와 갈등을 생각해보면 ‘낙서 최후의 날’이 남긴 교훈은 깊이 새겨볼 만한 일이다. 


‘낙서 최후의 날’의 줄거리는 이렇다. 남쪽 항구도시 OO문인협회장선거에서 醫師(의사)이자 隨筆家(수필가)인 B 씨가 당선됐다. B 씨는 독립운동가 가정의 후손으로 본업인 醫業(의업)에 精進(정진)하면서 隨筆(수필)도 열심히 써 온 작가였다. 그의 문학공간은 이미 文學評論(문학평론)가들로부터도 높이 평가받아 온 터였다. B 씨는 문인협회회장에 당선된 뒤 私財(사재)를 出捐(출연)하여 團體(단체) 명의의 機關誌(기관지)도 발간하는 등 단체 발전을 위해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 어느 회장 시절보다도 협회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B 회장에게 갑자기 不意(불의)의 질병이 發病(발병)했다. B 씨의 憂患(우환) 소식을 들은 한국문단의 元老(원로)인 R 선생이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R 선생은 B 씨의 병실에서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됐다. 병상에 누워 있던 B 씨가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이거 한번 보이소”하면서 우편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엽서에는 타이프라이터 글씨체로 “당신이 문인협회장 자리를 사퇴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란 내용이 쓰여있었다. 문인협회장 자리에서 辭退(사퇴)하라는 협박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목격한 R 선생은 집으로 돌아와 깊은 想念(상념)에 잠겼다. “감투가 무엇이기에 병들어 누워있는 환자에게 위로는 하지 못할망정 협박편지를 보내다니…”이런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자가 만일 문인협회장이란 감투를 획득했다면 문인상호간의 친목단체인 문인협회가 과연 어떻게 돌아갔을까를 R 선생은 곰곰이 상상도 해 봤다.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필시 그자는 문단 주변에서 공술이나 얻어 마시고 식객노릇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자일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문단 주변의 지저깨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좋은 작품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감투 쓰기에 이골이 난 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석공이 돌 깨는 법보다 눈 깜짝거리는 것부터 흉내 내는 엉터리 石工(석공)같은 못난 자일 것이란 생각도 해봤다. 문인이란 명함만 들고 다니며 大家(대가)행세하는 위선자의 소행이거나 특정인으로부터 使嗾(사주)받고 날뛰는 자의 경거망동일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R 선생은 몇 날 며칠 생각 끝에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패거리 병폐를 척결하기 위해 작품으로 고발하기로 했다. 작심하고 발표한 작품이 ‘낙서 최후의 날’이다. 작품이 당시 권위 있는 순수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되자 月評(월평)을 쓰는 작가들은 秀作(수작)으로 선정했다. 한국문단이 안고 있던 부끄러운 斷面(단면)이 용기 있는 작가에 의해 露呈(노정)됐다며 높이 평가했다. ‘낙서 최후의 날’은 문단의 화제작으로 문단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당지역에서도 난리가 났다. 문인들은 물론 시중의 일반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이런 몹쓸 者(자)가 문인이라는 탈을 쓰고 문인들의 名譽(명예)는 물론 地域人心(지역인심)을 더럽혔다고 해서 시끄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협박편지를 보낸 자의 同調者(동조자)들로 의심되는 일부 순수하지 못한 자들이 R 선생을 괴롭히며 공격에 나섰다. 賊反荷杖(적반하장)이었다, R 선생이 지역문단의 恥部(치부)를 폭로했다며 반격에 나섰다. 뒷골목 그늘에서 놀아나는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반란이었다. 급기야 R 선생을 문인협회 회원에서 제명하겠다고 나섰다. R 선생은 不汗黨(불한당)들의 폭거에 의해 자격이 剝脫(박탈)됐다. 暴擧(폭거) 亂動(난동)에 동조한 자들 가운데는 R 선생의 門下生(문하생)도 있었고 관계가 돈독했던 후배 문인도 있었다, 또 R 선생 댁에서 食客(식객)노릇을 하던 한심한 자도 있었다. 이런 인간들에게 幻滅(환멸)을 느낀 R 선생은 그들과 絶緣(절연)하고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R 선생은 평생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한 功勞(공로)를 인정받아 大韓民國(대한민국) 藝術院(예술원)賞(상)을 수상했다. R 선생은 수상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문학의 본질은 인간 구원인 동시에 告發(고발)”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R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국립대학의 後門(후문)과 시민공원에는 R 선생의 雅號(아호)를 따서 命名(명명)한 文學路(문학로)가 있고 그 길 담에는 그 文句(문구)가 기록돼 있다.


R 선생이 강조했던 고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문학은 인간내면의 苦惱(고뇌)와 煩悶(번민)에 대한 접근이어야 한다. 正義(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고발이고 不義(불의)와 不法(불법)에 대한 고발이며 비문화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고발이요 폭력에 대한  항거요, 거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反芻(반추)해 본다. 


‘낙서 최후의 날’ 그로부터 47년. 한 時代(시대)의 큰 어른으로 호통 치며 문학 이전에 인간이 먼저 되라고 꾸짖은 R 선생은 돌아가신 후에도 존경과 기림을 받고 있다. R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활기차게 펼쳐지고 있다. 선생으로부터 배운 제자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문학재단과 문학상을 制定(제정)하고 문학관도 건립하여 운영하며 선생의 문학 업적과 高邁(고매)한 문학정신을 후세에 전해 오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문학축제와 함께 문학기행도 열리고 있으니 遺芳萬世(유방만세)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협박을 받았던 B 회장도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최근 그분의 이름을 딴 수필문학상을 제정했으니 自然萬法(자연만법)이 순리대로 돌아감을 실감할 뿐이다.


‘낙서 최후의 날“ 그 이후 47년. 다시 한 번 한국문단에 話頭(화두)를 던진다. 한국문학은 얼마나 달라졌고 世界化(세계화)됐는가? 한국 문단은 얼마나 정화되고 당당해졌으며 화합하고 있는가? 邪惡(사악)하고 奸巧(간교)한 패거리들은 사라졌는가? 권력과 야합하고 오염된 문단권력은 문학자체를 위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政文癒着(정문유착)의 추하고 지저분한 연결고리는 제대로 끊어졌는가?

 

 

[ 2022-04-19, 16: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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