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끝났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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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어떻게 바꿀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손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손녀는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다. 매일 일어나면 고정적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고 매달 영어 소설 한 권을 읽어야 한다. 빈틈없이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학원을 가야 한다. 두꺼운 영어책으로 들어찬 손녀의 등짐같은 가방은 내가 들어도 무겁다.
  
  손녀는 과학고를 가고 공대를 나와 미국의 나사에서 근무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누가 그런 꿈을 심어줬는지 잘 모르겠다. 손녀가 두세 살 때 손녀를 보면 할머니가 그림책으로 만든 성경을 조금씩 읽어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면 손녀는 통통 뛰어가서 성경책을 가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놓고 무릎 위에 털썩 앉곤 했었다. 그런 손녀가 톱니같이 돌아가는 세상의 교육시스템 속에 빠져들어간 것이다.
  
  얼마 전에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반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인물이었다. 기타도 수준급이라 대학시절 홍대 앞 카페의 무대에서 노래도 불렀다고 했다. 믿음이 깊은 그는 자신의 음악재능을 여러 힘든 사람들의 위로에 쏟아 부었다. 그래도 그의 사업은 나이 칠십이 닥쳐온 지금까지 번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이 대기업 영국지사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손녀가 이튼 스쿨을 다녀. 그런데 손녀가 카톡으로 성적표를 보낸 걸 보니까 모두 올 에이야. 허허.”
  
  할아버지는 손녀가 그저 귀여운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이놈이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배워주고 어디 데리고 놀러가려고 해도 자기 공부해야 한다나.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또 다른 손자도 아들이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어.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는데 학비가 꽤 비싸.”
  
  가정에서 부담해야 할 교육비가 엄청난 것 같다. 그래도 내 자식만은 하는 마음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내 경우 초등학교 시절 변두리 학교를 다니고 일류과외를 하지 못했어도 혼자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전과와 문제집을 공부해서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었다. 중고교시절 부잣집 아이들 일부가 특수과외를 하는 경우가 있어도 혼자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소위 스카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직이 되면 그런대로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소리들을 듣곤 했다. 몇십 명 가량의 극소수를 뽑았던 고시에 합격하면 조선시대 과거급제한 것처럼 사회적 지위가 급상승하기도 했었다. 입시나 고시라는 건 가난한 집 아이도 노력하면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였다.
  
  치열한 경쟁을 없앤다고 평준화 바람이 불었다. 중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가 없어졌다. 전국의 대학을 늘려서 웬만하면 누구나 대학생이 될 수 있게 됐다. 고시제도를 없애고 여러 개의 로스쿨을 만들었다. 평준화하려던 것이 교육비가 없으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시대가 끝이 난 것이다. 부의 양극화가 교육 속에도 들어왔다. 며칠 전 미국 동부의 일류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딴 청년의 부모가 자식의 앞날에 대해 물었다. 거액의 교육비를 투자한 부모는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이 안착할 곳은 없었다. 당장 현장에 투입할 실무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 로펌들도 월급 몇배의 수입원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동양계 변호사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전문직의 허망함은 국내도 비슷했다. 몇몇 일류 로스쿨을 제외하고는 대형로펌에서 고용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지방대학의 교수를 하는 친구한테서 들었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하급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지방대를 사실상 차별하기 때문에 공무원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많은 교육비를 투자하는 실질적인 목표가 아이들을 대기업이나 공무원 전문직으로 만들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한 논문을 보니까 좋은 학교를 나온 5% 정도의 청년이 그렇게 되고 나머지 95%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 불안정한 삶을 산다고 한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년 이상이 된 대학동창 모임에 가면 거의 다 대기업 임원을 했거나 고급공무원 그리고 전문직을 했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인생 후반에 밥 한 그릇도 싼 식당을 찾아갈 만큼 노후 생활이 불안하기도 하다. 5%안에 들었던 인생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교육제도를 이렇게 두어도 되나?하는 의문이 든다.
  
[ 2021-02-11, 14: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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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1-02-11 오후 10:45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주제넘게 용되려고 깝치지말고 가재, 붕어, 개구리로 행복하게 살아라, 알것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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