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남이 엄마가 건네준 어묵 한 조각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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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서 유튜브에서 찬송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기도를 하다가 기억의 깊은 바닥에서 뭔가 뭉글뭉글 방울이 되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다섯 살 무렵의 한 장면이었다. 그 시절 동대문 밖 가난한 동네의 정경이 떠오른다. 산에는 굴 껍질 같은 판자집들이 즐비하고 산자락에는 그나마 열 평 정도 하는 서민들이 사는 한옥들이 거무스름한 기와지붕을 맞대고 들어차 있었다. 진창물이 흐르는 좁은 흙바닥의 골목은 어른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정도로 좁다. 모두들 처절하게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날 낮 나는 뒷집으로 놀러 갔다. 그 집을 항남이네 집이라고 했다. 그 집 아이들이 오글 오글했다. 항남이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손바닥만한 얇은 어묵 한 장을 앞에 놓고 있었다. 지금 시장통의 김이 피어오르는 스테인리스 오뎅통에서 꼬치에 한 장씩 꿰어 파는 제일 값싼 그 어묵이었다. 당시에는 포구에서 나오는 생선 쓰레기를 가져다가 갈고 압축시켜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다.
  
  항남이 엄마는 그 얇은 어묵 한 장을 칼로 가로 세로 잘라 네모난 작은 조각으로 만들었다. 먹이를 기다리는 새 새끼들처럼 자식들이 앞에 둘러앉아 엄마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항남이 엄마는 손톱 두 개정도 될까말까 하는 그 어묵 조각을 간장에 찍어 입을 벌린 아들과 딸들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어렸던 나는 눈치도 없이 그 뒷자리에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가난한 항남이 엄마는 자식에게 먹일 그 어묵 한 조각을 간장을 찍어 뒤에 있는 내 입 속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세상에서 처음 먹어본 것 같다. 육십여 년의 아득한 세월 저쪽에 있던 한 장면이 왜 이른 아침에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묵 한 조각의 고마움에 늙은 나는 순간 눈가가 촉촉해졌다.
  
  오래 전 불교 관련 책을 읽다가 본 장면 하나가 겹쳐진다. 부처님이 누더기 옷을 입고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 모두가 가난한 집들이었다. 어느 집으로 들어갔더니 노파가 작은 그릇에 담긴 따뜻한 죽을 손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부처님이 보기엔 아이들 허기를 메우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노파가 먹을 죽은 없는 것 같았다. 부처님은 슬며서 돌아서 나오려고 했다. 그 순간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죽을 한 그릇 받아 가시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노파는 죽을 한 국자 부처가 들고 있는 바루에 담아 주었다. 부처는 그 노파의 마음을 자비심이라고 표현했다. 어릴 적 나에게 어묵 한 조각을 주었던 항남이 엄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을 게 틀림이 없다. 그 자식들과도 초등학교 이전 어릴 적 동네에 살 때 기억 외엔 없다. 이십여 년 전쯤 나의 칼럼을 우연히 봤는지 항남이란 어릴 적 이웃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라고는 표현했지만 나보다 몇 살 나이가 위인 것 같기도 했다. 같이 골목에서 말 까기나 구슬치기를 하던 기억이 없다.
  
  “나는 재래시장에서 오랫동안 과일을 팔고 있어요.”
  
  그의 말이었다. 인정이 없는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 가게를 찾아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작은 어묵 한 조각은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탑골공원 뒷골목을 간 적이 있었다. 공원 안 벤치에는 횃대에 나란히 앉아있는 새들처럼 노인들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뒷골목 인도의 경계석에도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끼니 때가 되면 무료 급식소 앞에 백 명 이백 명의 노인들이 줄을 지어 있다. 그 근처에서 파는 국밥이나 국수 한 그릇의 값은 이천 원이었다. 길 건너 일반식당의 오분의 일 정도였다. 나는 그곳에 들를 때면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씩을 동그랗게 말아 똘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간 적이 있다.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안타까와 보이는 노인이 있으면 슬며시 다가가 남 몰래 손에 쥐어 주었다.
  
  길을 가다가 돈을 주고 싶은 노숙자를 보고 잔돈이 없어 그냥 지나친 적이 많았다. 한번 지나치면 그런 기회도 다시 오지 않았다. 작은 어묵 한 조각이 평생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 기억의 바닥에 남아 있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주위에 보내는 마음 한 조각 작은 눈길 하나 미소짓는 표정 하나가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게 아닐까.
  
[ 2021-02-07, 12: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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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1-02-07 오후 2:49
어묵 하나의 친절을 기억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도 따스하여 온종일 훈훈해 질거 같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세월이라 더욱더 빛이 나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글 읽을수 있어 여기에 들어온 보람이 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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