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정략 결혼
“우리 집안은 며느리들을 절대로 권력가나 재벌 집에서 데려오지 않아"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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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재벌가로 시집을 간 전직 대통령 딸의 이혼이 잡지의 기사로 난 걸 봤다. 내막은 모르지만 내 눈에 비친 겉모습은 권력과 돈의 결합으로 보였다. 정략결혼이라고나 할까. 대통령은 비자금을 사돈 회사에 은닉해 놓았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고교동창 중에 두 재벌그룹의 회장이 있었다. 서로 사돈을 맺기로 하고 아들과 딸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걸 봤다. 그 얼마 후였다. 양가에 불화가 일고 동창들의 이메일에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글을 보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싸우는 모습이 추했다. 아이들의 결혼이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략으로 되는 경우도 많았다.
  
  가난한 집안의 딸들도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난한 집 출신의 며느리가 부자 시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한국의 뿌리 깊은 부자 집안을 연구한 적이 있다. 삼양사 그룹이었다. 수없이 많은 재벌이 일어나고 쓰러졌지만 그 가문은 백년간 그 부(富)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삼양사 그룹은 삼성 이전에 오랜 세월을 국내 재계서열 일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창업주인 김연수 회장은 일제 강점기 조선기업인으로서 경성방직을 운영하면서 조선인 최초의 재벌을 이루었다. 만주에 거대한 방적회사를 설립하고 면제품으로 중국시장을 휩쓸었다. 조선과 만주에 수많은 농장을 개척하고 백두산까지 개발했었다. 그는 만주에 있는 수많은 외국계 회사와 호텔 아파트를 소유했다. 동아일보의 주식 대부분을 인수하기도 하고 고려대학 건축자금의 대부분을 댔다. 일본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유일한 조선 기업인이었다.
  
  그의 경영철학은 조선의 경제적 독립이었다. 그는 경제 면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그가 후계자로 아들인 김상협을 찍었다. 김상협은 일본인 수재들도 들어가기 힘든 동경대학교를 졸업했다. 만주에 있는 아버지의 방적 공장을 맡아 경영했다. 일본의 재벌그룹 회장이 그를 사위로 삼기 위해 청혼을 하기도 했었다. 일본 재벌과 조선 재벌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때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정략적 차원의 결혼을 거부했다. 백년간 부를 유지해 온 부자 가문의 진짜 보물은 정략을 싫어하는 정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요즈음은 더러 예전에 쓴 일기를 들추며 바둑을 복기하듯 과거를 반추할 때가 많다. 이삭줍기를 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과거의 일기들을 보면 세상의 나쁜 면에 더 눈이 밝은 것 같다. 비판적이고 세상의 모순에 손톱을 세우는 모습이 많다. 날카로운 지적이 사회를 고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강둑에 서서 주위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어느새 조금 바뀌었다. 무심히 써두었던 일기 속 대화에서 전에 안 보이던 남들의 장점이 더러 보인다. 일기 속에 묻혀있던 말 몇 마디가 내게 튀어 올랐다. 이천팔년 칠월 십이일 혜화동의 일식 튀김집에서 삼양사 그룹의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손자와 대화한 내용이었다. 그는 고교 일년 선배였다. 그는 집안의 개인은행인 셈인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그룹의 회장이다. 그가 대화중에 이런 말을 한 게 적혀 있었다.
  
  “솔직히 우리 아버지는 젊은 날로 치면 지금 삼성의 이건희 회장 위치였지. 그런데 난 아버지가 평생 남한테 화를 내거나 반대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어쩌다 ‘그건 나 생각하고 많이 다른데요’라고 하면 그건 아주 강한 거절의 의사표시였지. 나는 아버지가 돈 있는 티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내가 보기에 아버지의 품성은 타고난 겸손이었어. 우리 집안의 흐름을 보면 권력가에서 중매가 들어오면 그건 싫어해. 인연을 맺기 싫어하는 거지. 우리 어머니는 개성의 병원 집 딸이었지. 집안의 남자들을 보면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 동아일보를 경영하는 친척이 삼성가와 사돈을 맺었는데 그것도 정략결혼은 아니야. 자기들끼리 진짜 연애를 한 거야.”
  
  그의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 김상협 교수는 내가 대학 시절 총장이었다. 그 얼마 후 나는 그의 사촌동생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와는 오랜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다양한 스포츠제품을 만드는 낫소 그룹의 회장이었다. 얘기 중에 그가 집안의 결혼 문제에 대한 인식에 대해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집안은 며느리들을 절대로 권력가나 재벌 집에서 데려오지 않아. 정략결혼을 하지 않는 거지. 내가 젊었을 때 권력을 잡고 서슬이 퍼렇던 장군집에서 중매가 들어왔어. 군사정권 시절이라 세도가 당당했지. 그때 우리 아버지는 반대하셨어. 또 그때 실세 정치인 쪽에서도 나와 결혼시키자고 중매가 들어온 적이 있지. 아버지는 그것도 거절하셨어. 그게 우리 집안의 흐름이야.”
  
  나는 그의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정의감이 강한 훌륭한 여자였다. 바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검소한 여성이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인간을 보지 않고 권력이나 돈을 보는 정략결혼은 불행의 원인이 아닐까. 그래서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보지 말고 목적 그 자체로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이나 다른 집안의 장점을 그냥 순수하게 글로 남겨두고 싶어 적어둔다.
  
  
  
  
[ 2021-01-14, 09: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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