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굴비를 포장해 주실 수 있어요?”
“타서 없어질 건데 아깝게 명품은 왜 입어? 나는 내가 입던 청바지를 입고 화장장(火葬場)으로 갈 거야. 사실 그 청바지도 아깝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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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임금 인종 때 장성 출신의 시인 김인후가 있었다. 그가 이십 년 동안 쓴 일지를 보고 많은 감동을 얻었었다. 그는 경전을 암기하는 과거 준비보다는 시에 빠져 십여 년 동안 낭인 같은 생활을 했다. 그때 그의 친구가 퇴계였다. 그의 시가 노래가 되어 조선 기생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는 뒤늦게 과거급제를 하고 잠시 벼슬을 했다.
  
  그는 인종과 죽이 맞았던 것 같다. 인종은 그림을 그리고 그는 그 아래 시를 지어 합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유인인 그는 일찍 장성으로 낙향해서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의 일지 속에는 신기하게 자손에 대한 독특한 기원이 적혀 있었다. 가난하게 살던 그는 후손 중에 조선 최고의 갑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손들이 대나무같이 바르고 검약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장성에 가면 그의 일지와 시들을 보관한 필암서원이 지금도 있다.
  
  나는 그의 자손들을 살폈다. 조선 말에야 비로소 근대적 소유권 개념이 생긴 것 같다. 그 이전에는 모든 땅이 왕의 것이었다. 조선 말에 전라도 최고 갑부 김경중이란 인물이 나왔다. 그의 자손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삼양사라는 농장회사를 차렸다. 그는 경성방직을 인수해서 아들 김연수에게 경영하게 했다. 김연수는 조선인으로 최초로 재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만주에 여러 농장을 개척하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그 집안의 부는 삼양사를 통해 백년이 넘는 세월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조선인 최초의 재벌인 김연수 회장의 손자 중에 나와 학연이 있는 김병진 회장이 있다. 그는 다양한 스포츠용품을 만드는 낫소의 회장이었다. 오래 전 나의 법률사무소 근처의 음식점에서 그와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사잡지 월간조선에서는 그의 집안을 한국의 명문가로 소개하기도 했었다. 밥을 먹고 나니까 상 위에 있던 조기 조각들이 조금 남았다. 친구인 김병진 회장이 옆에서 상을 치우는 종업원을 보면서 말했다.
  
  “남은 굴비를 포장해 주실 수 있어요? 가지고 가게.”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덧붙였다.
  
  “미안해, 얼마 안 되는 음식이지만 우리 집안은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이래왔어. 어렸을 때는 궁상떠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까 그게 가문의 풍습이고 교육이구나 하는 걸 느끼는 거야.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서류의 이면지를 써 왔어. 어릴 때 아버지가 회장일 때도 그렇게 하시는 걸 보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거지. 그래왔으니까. 남들은 이름난 부자 집에서 왜 저런 모습을 보이나 하고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원래 그래왔어.”
  
  그는 물론이고 그 집안 사람들을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 봤다. 전체적인 흐름이 그런 것 같았다. 그의 사촌 형뻘인 JK금융그룹 회장 부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인 회장이 아내에 하는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왜 그렇게 비싼 베옷을 입히고 화장하는지 몰라. 금세 타버릴 건데 말이야.”
  “맞아요, 나는 죽어서 절대 베옷은 안 입을 거야. 어쩐지 싫어. 내가 가진 옷 중에서 우아한 명품을 입었으면 좋겠어.”
  
  “타서 없어질 건데 아깝게 명품은 왜 입어? 나는 내가 입던 청바지를 입고 화장장으로 갈 거야. 사실 그 청바지도 아깝지.”
  “아니 그러면 당신은 죽은 후 조상님을 만날 때 팬티만 입고 만날 거야?”
  
  그의 아내가 반박했다. 나는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속으로 픽 웃은 적이 있다. 재벌가 회장들의 깊은 내면의 일부였다. 변호사를 하면서 뿌리 깊은 부자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진짜 좋은 부자는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히 인색하면서도 남에게는 후했다. 삶과 생각 자체도 평범한 소시민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재벌을 구름 위에 사는 다른 존재같이 묘사한다. 천민자본주의에서 탄생한 일부 졸부의 의식을 일반화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을 만들어진 허깨비들에게로 돌린다. 권력 유착과 부정과 비리로 부자가 되는 시절이 끝나고 있다. 검약의 청교도 정신을 가진 부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보다 더 좋은 부자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의 부자가 아닐까.
  
[ 2021-01-01, 10: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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