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한 게 뭐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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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 무렵 몇 명의 고참 변호사들이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 모였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애로사항을 나누는 자리였다. 판사 생활을 오래 한 송 변호사가 먼저 말했다.
  
  “요즈음은 고객들이 찾아오면 전문분야가 뭐냐고 꼭 묻더라구.”
  
  그는 민사, 형사, 가사, 행정 등 각 분야를 삼십 년이 넘게 골고루 해 본 사람이었다. 새로 개업한 젊은 변호사들은 이혼 사건을 몇 건 해 보지 않고 이혼 전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형사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이삼십 년간 많은 사건을 처리한 변호사들은 고객들이 전문분야가 뭐냐고 하면 갑자기 뭐라고 대답할까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질문을 받으면 적당히 한 분야를 대곤 해요. 길게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법원의 판사들도 서서히 한 분야의 사건만 처리하게 해서 전문성을 가지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인 김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대부분 로펌을 가려고 하지 개인 변호사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아요. 대형마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하고 똑같아요. 그렇지만 로펌도 변호사 숫자가 백 명 이상이고 상위 다섯 번째 정도까지만 살아남지 이삼십 명 정도의 중소 로펌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 운영도 개인변호사들이에요. 각자 독립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포장만 로펌인 것들이 대부분이죠.”
  
  부장판사 출신의 송 변호사가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로펌에 이름만 걸치고 개인사무실을 하고 있어요. 변호사 생활도 십팔 년쨉니다. 처음에는 잠깐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 법관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법원을 가보면 후배 판사들이나 법원 직원들한테서 냉기가 흐르는 것 같이 느낄 때가 많아. 법원 공무원 노조의 공격 대상이 변호사들이죠. 뭐 잘못한 게 많으니까 그럴 만도 하죠. 법원 공무원 노조가 법원에 있던 변호사 변론준비실도 모두 폐쇄하고 쫓아냈잖아. 노조 때문에 판사들도 직원에게 잘못을 지적하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전에 노조가 없던 법원에서 실무를 배울 때를 떠올리면 판사와 직원은 계급과 신분이 다른 봉건시대의 구조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 직원들이 상당 부분은 고시공부를 하다가 실패하고 법원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좌절된 꿈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가 꿈꾸던 그런 자리에 앉은 판사들을 매일 본다는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었다. 그 보복이 돌아오는 것이 변호사일 수도 있다. 법관 출신 송 변호사가 말을 계속했다.
  
  “어떤 때 보면 법원 직원들이 사건에 관한 통지들을 담당변호사인 내게 하지 않고 꼭 의뢰인에게 직접 해요. 그러니까 내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이 재판 일자나 서류들을 먼저 받고 내게 알려주는 형태가 된 거죠. 재판날짜도 모르는 변호사가 망신을 당하는 셈이 되고 변호사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는 거죠. 법원 직원이 사건 내용을 입력할 때 담당변호사를 입력하면 그 다음부터 자동적으로 송달이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법원에 있을 때 잘못을 해서 보복을 당하는 건지 아니면 법원 직원의 부주의인지 하여튼 별 것 아닌 일에 서글픈 경우가 있어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해오셔서 세상에서는 전관예우를 받고 법원 편으로 분류가 되는데 판사의 생리에 대해 한말씀 해보시죠.”
  
  내가 그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저도 판사를 했지만 판사란 덤벼들면 꼼짝 못하고 위축되고 그 앞에서 기면 밟고 함부로 대하는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인격이 있는 판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변호사들까지 모두 그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기지만 저는 엉겨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삼십여 년의 변호사 생활을 마치고 이제 사실상 은퇴하는 단계다. 변호사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마치 총구 앞에서 겁 먹은 개처럼 납작 엎드려 비는 시늉을 했다. 오만한 권력은 도살장의 기계처럼 매뉴얼에 따라 그들을 처리했다. 그게 내가 본 법의 현실이었다. 변호사는 재판을 받는 당사자의 진실과 억울함을 담담하게 말로 그리고 글로 넣어 전하는 역할이었다. 검사와 판사의 오만과 사무적인 무관심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렇게 해서 법의 오작동을 막는 소명이었다. 부자는 되지 못해도 아이들의 입에 밥을 넣어줄 수 있고 학교를 보낼 수 있었던 감사한 직업이었다.
  
[ 2020-11-09, 19: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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