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잡기(雜技)도 열정적으로 해온 삶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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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야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아무 때나 거리낌 없이 찾아가는 고등학교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정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뭐하고 있어?”
  “뭐하긴? 방에 틀어박혀 있지.”
  
  “그러면 나와 저녁이나 같이하자.”
  “그래 청계산 밑에 곤드레밥집이 있는 데 거기 가서 먹자.”
  
  우리 둘은 청계산 아래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반주로 나누면서 밥을 먹으면서 얘기했다. 그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고 인권위원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인생 도정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고 있었다. 즐거운 일도 같이 겪고 힘든 일도 함께 했었다.
  
  “노년의 요즈음은 어떻게 보내냐?”
  내가 물었다.
  
  “벌써 오카리나를 분 지가 십 년이 돼. 팀을 이루어 공연도 다니고 했는데 이제야 음악성이 없는 걸 확인했어. 나는 음악 쪽에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거야. 그리고 댄스교실에도 몇 년을 나가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몸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아침마다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데 아무래도 나는 제대로 믿는 것 같지가 않아.”
  
  “하나님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은혜를 주지는 않지. 악기 하나도 잘 불려면 인생을 바쳐 올 인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전해 들은 소리지만 정경화씨는 한 소절을 억번이나 연습을 했다고 하더라. 트롯가수인 나훈아도 끊임없는 연습을 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늙어서 여기로 하는 음악이 가야 어디까지 가겠어? 욕심이지. 그래도 너는 젊어서 판사를 했잖아? 판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맞아.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회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한 일이지. 그렇지만 사표를 쓰고 나올 때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어. 항상 조직에 누가 되지 않게 행동하려고 조심하니까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었는지 몰라.”
  
  그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 일에 전념했었다. 젊은 시절 수술을 하고 입원실에 있는 그를 문병 간 적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거즈를 코에 막고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였다. 같이 대학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독감이 걸렸는지 그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는지 책을 놔두고 일어서서 도서관을 나갔다. 몇 시간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용인에서 개인의원을 하는 아버지에게 가서 링겔을 맞고 돌아온 것이다. 자기가 계획한 공부 시간은 고열이 나고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의 집요함과 노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그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판사가 되어 내가 치르는 고시장에 따라와 걱정을 하며 지켜보기도 했었다.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는 어땠어?”
  내가 그의 앞에 놓인 노란 양재기에 막걸리를 부어주면서 물었다.
  
  “판사를 할 때는 감겼던 눈이 열리더라구. 진짜 인권이 보이고 운동권 출신들의 생각을 알게 됐었지. 우리들은 체제에 순종하고 세상의 양지쪽을 걸으려고 했었어. 그런데 운동권 출신들은 그렇지 않았어. 자기를 희생하면서 독재의 담을 허물라고 했던 거야. 물론 그들 중에도 또 다른 권력지향적 출세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야.”
  
  인생의 기나긴 노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끊임없는 작은 성취의 기쁨을 만끽한다면 삶 자체는 늘 축복일 것이다. 그는 그런 친구였다. 공부만이 아니라 운동도 잡기도 열정을 가지고 했다. 일본영화 ‘쉘 위 댄스’를 보면 중년의 남자가 쑥스럽게 댄스교실의 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열정이 불붙은 그는 밤의 조용한 공원에서 스텝을 밟으며 연습을 한다. 친구도 그런 스타일이었다. 누구나 열정은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그 열정을 삼십 분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삼십 일밖에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친구는 삼십 년을 능히 가고도 남을 집념의 남자였다. 나는 친구에게서 성공의 비결을 보았다. 청계산 밑의 밤길을 걸어오면서 친구가 유튜브에서 노래 하나를 찾아 틀어주면서 말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시(詩)가 있을 수 있어? 멜로디도 그렇고. 기가 막혀.”
  검은 하늘에는 하얀 보름달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2020-10-07, 21: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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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3 오후 6:51
자유 민주대한민국에는 진짜 독재는 하나도 없었다!!! 자유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나라에는 존재해서도 안되는 악독한 이념도 자라나 이제는 국민을 속여 정권을 잡게했으니 독재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일까??? 없었다!!! 북한을 보라!!! 독재는 북괴를 보라!!! 북괴가 보여주고았는데도 국민은 독재에 무식한것이다!!! 세상에 보지도 못한 세상은 김일성의 "흰밥에 고기국"과 같은 헛소리로 75년을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독재한 세게 유일의 민주,인권 없는 세상에 있을수없는 삼대 세습 독재를 현실로 보면서 이를 추종하는 운동권 촛불 불나비들의 말로는 이제는 끝내야한다!!! 국민은 각성해야한다!!! 더 이상 살찐 돼지라는 자유 민주 대한민국 국민이되어서는 안된다!!!
  ewl1180   2020-10-07 오후 10:24
운동권 출신들이 진짜 인권을 했다고 아직도 믿고 있으시는 것은 아니지요? 그들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독재의 담을 허물려고 했니요? 진짜 독재시절에 자기 희생을 했나요?사악한 이념에 빠진 자들이 희생이라고 포장한 것은 이닐까요?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보다 작금의 삶이 더 속박당하고 자유는 빼앗기고 있어 괴롭고 힘드네요. 차라리 그들이 주장하는 군부독재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민주아닌 민주, 평화없는 평화, 정의없는 인권, 등등...너무 아름다움 단어들이 오염되고 있어서 불쌍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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