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유자(儒者)’와 '내가 복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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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을 전공했던 김상협 교수의 일생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는 조선 말부터 그 富가 백 년을 내려오는 갑부집 아들이었다. 머리도 뛰어났다.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던 시대 일본인들도 들어가지 못한 명문고와 동경대학교를 나왔다. 일본의 재벌이 그를 사위로 삼으려고도 했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조건을 그렇게 갖춘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동경제국대학 졸업 후 그의 행적은 특이하다. 다른 조선인 유학생들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조선으로 돌아가 군수나 총독부의 고위공무원을 희망할 때였다. 그는 일본의 눈 덮인 산속의 방직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만주로 가서 ‘남만방적’이라는 공장의 회계를 담당하는 계장 노릇을 했다.
  
  해방 무렵 그는 거지 같은 초라한 모습의 중공군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어떤 약탈도 겁탈도 하지 않았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그의 일행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모습에 감동을 했던 것이다.
  
  해방 후 그는 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강단에서 모택동 사상을 가르쳤다. 재벌의 아들인 그를 속칭 빨갱이로 모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벼슬을 싫어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문교부 장관으로 쓰려고 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장관이나 총리나 그는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처음부터 사직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좀 더 하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그는 진심으로 빨리 그곳에서 풀려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개결한 선비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런 분들이 이 사회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믿음이 깊었던 백년 전 일본의 한 노인은 내게 ‘복음적 유자(儒者)’가 되라고 책의 페이지 속에서 넌지시 권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양에 유자(儒者)라는 인사들이 있었소. 도(道)를 생활신조로 삼았던 선비들이요. 그들에겐 서재 이외엔 그가 신봉하는 것을 안치할 장소라고는 없었소. 그들은 유교로써 입신했소. 그들의 경전은 사서오경이었지. 그들은 그것으로 수신하고 치국하려고 했소. 그리고 그들은 또한 책의 사람이었소. 사원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제단을 장식하려고 하지 않았소. 다만 경서에만 의지하고 그것으로 백성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사업에 성공을 거둔 것이오. 그런 유자(儒者)들은 동양인의 스승이오. 예수를 믿는 당신도 한번 그런 복음적 유자가 되어보지 않겠소?’
  
  그의 독특한 제의였다. 그가 책 속에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서양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전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굳이 서양의 선교사를 흉내 낼 필요도 없고 말이요. 우리는 유학을 하는 선비들이 경서에 의지한 것처럼 성경에 의지해야 하오. 선비들이 사원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굳이 교회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선비들은 그들의 서재에 파묻혀 천하를 교도하였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라고 어째서 성스러운 밀실에 들어앉아 성경과 기도로써 국민들을 인도할 수 없겠느냐는 말이오. 우리도 성령을 받은 선비로서 궁핍을 참고 견디면서도 부자집에 드나들지 않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선비로서의 품성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게 아니겠소?’
  
  그 노인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아침 일어나 성경을 읽는다. 나의 작은 머리 용량으로는 평생을 읽어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 마음에 스며들어온 부분들 만을 원고지에 베껴 써서 공책을 만들었다. 그것을 ‘내가 복음’이라고 마음 속으로 명칭을 부여했다. 그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읽고 또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두뇌와 마음과 영혼이 그것들로 꽉 차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공짜로 계시를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기억 속에 많은 말들을 저장해 두어야 하나님이 계시를 할 때 제비뽑기 같이 그 말 중의 하나를 뽑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뽑힌 말씀의 제비가 화두가 되면 다음은 기억의 서랍 속에서 내가 체험했던 나의 고통과 나의 죄를 찾는다. ‘마음의 참모습 그대로’를 전하려고 애쓴다. 부끄러운 나의 체험담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단순히 겪은 걸 알려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건 분수에 맞는 착실한 일을 찾는다는 건 귀하다는 생각이다.
  
[ 2020-10-05, 23: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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