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 맞고 불태워진 공무원과 대통령의 공감(共感)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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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를 삼십여 년 해오면서 회의가 드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양심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다. 이십오년 전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을 변호했었다. 도둑질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기나긴 감옥생활에서 석방이 된 후 그는 사회에서 밝은 빛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다시 절도범이 되었다. 그리고 야행성 동물처럼 자기의 그늘로 숨어들었다. 그는 내게 “프로의 세계는 은퇴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절도하지 말라는 양심은 없는 것 같았다. 전과자 노숙자들에게 평생 밥과 잠자리를 주어온 목사의 이런 얘기를 들었다.
  
  “평생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줬어요.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 일을 제가 유명해지려고 하고 중간에서 돈을 횡령했을 것이라고 의심을 하면서 덤벼드는 겁니다.”
  
  그 목사는 절망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목사의 양심도 갈라진 강바닥같이 메말라가는 것 같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에 나오는 장 발장 같은 양심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면 보통국민들의 양심은 지금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정부에서는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지원금을 무차별적으로 뿌리고 있다. 변호사인 나에게도 돈이 왔다. 도대체 그 돈의 성격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배상금도 보상금도 아니다. 극빈자가 아니니까 생활 보조금도 아니다. 모호한 성격의 돈이다.
  
  그 수천 배에 해당하는 돈을 나는 세금으로 냈었다. 그 세금은 나의 진한 땀방울이었고 가난하던 어머니의 피이기도 했다. 그런 돈을 마치 자기 돈처럼 마구 뿌리는 위정자가 마땅치 않다. 거저 받은 그 돈으로 피부과에 가서 점을 없애는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의사로부터 직접 들었다. 뒷골목에서 변칙적으로 명품을 취급하는 업소에 가서 샤넬백을 샀다는 사람의 얘기도 들었다. 국가에서 뿌리는 돈은 국민들의 염치를 없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양심 없이 동네 음식점에 가서 그 돈으로 손자 손녀 밥을 사주었다. 그 돈 속에는 낚시바늘이 숨어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가미가 꿰어 강 저쪽에서 낚싯대를 쥐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끌려갈 것 같다. 그들이 인심 쓰는 그 돈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내남없이 보통국민들의 마음도 공짜에 마비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신다는 한 층 높은 양심의 신자들은 어떨까. 한 대형교회 황제 목사의 거액헌금 횡령을 다루는 법정에서였다. 횡령한 목사는 면죄부를 받고 고발한 신도 한 사람만 명예훼손으로 기소가 됐었다.
  
  “십이만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대형교회에서 어떻게 당신 혼자만 횡령 사실을 고발하고 떠듭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신도들은 무엇입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피고인이 된 그 신도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들은 크리스챤이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좀비입니다. 좀비에게는 영혼이나 양심 같은 게 없죠.”
  
  모두가 우향 우 하는 교회조직 내에서 혼자 좌향 좌 하는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같이 보였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양심을 일깨워주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빵보다 양심의 혁명이다. 사람들의 정신에 새로운 생명이 들어가야 한다. 중국의 문학가 노신이 동경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어느 날 학교 강당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작은 덩치의 일본군이 칼을 빼 들고 무릎을 꿇고 있는 여러 명 건장한 중국인들의 목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중국인들이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통탄했다. 그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패배하는 것은 국가적 양심과 영혼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해의 어업지도선에 승선했던 대한민국 공무원 한 사람이 북한군에게 총에 맞고 불태워진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그 동기가 어떻든 대한민국 국민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한 명의 국민도 등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국심을 일으킨다. 죽은 김일성은 인민 한 명이라도 다치면 국가는 그 보복을 끝까지 한다는 방침이었다. 보호가 먼저였다. 우리 국민이 총에 맞고 불태워진 사실 앞에서 대통령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의 죽음에 절실히 공감하지 못한 탓으로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으로 갔다. 대통령의 마음에 국민들은 민감하다.
  
  북한군 총에 맞고 불태워진 대한민국 공무원 한 명의 죽음은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적 양심이기 때문이다.
  
[ 2020-10-05, 09: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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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토   2020-10-05 오전 11:40
촛불혁명? 이 말이 엄변호사의 생각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군요..글에서는 양심혁명 주창하드니 촛불난동을 촛불혁명으로 받들다니..지금까지의 엄변호사의 이상하게 느껴지던 글들도 이해됩니다.. 촛불혁명?
가장 사기극이 촛불난동이고 사기불법탄핵이라는건 언젠가는 밝혀질거여요.양심혁명? ㅋㅋ..웃습니다..테스형이 남긴 말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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