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결한 자존심의 두 기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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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정권 말 안전기획부에서 보좌관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안전기획부장으로 대학교수가 임명됐다. 그곳에 근무하는 요원이 새로 임명된 안전기획부장을 모셔와야 하는데 직접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내가 신임부장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요원들이 모시러 갈 겁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 택시를 타고 청사 앞 면회실로 가서 다시 전화를 하면 되죠?”
  “아닙니다. 요원들이 갈 겁니다.”
  
  점심 때 신임부장을 모셔온 그 요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차 안에서 말이죠. 신임 안기부장이 저한테 말씀을 하는데 자기 사주팔자를 보면 관운이 분명히 있는데 환갑이 넘도록 평생 아무 벼슬도 못했다는 거에요. 그러다가 이제야 안전기획부장이 되는 걸 보니까 관운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더라구요.”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유전자가 아직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 자리를 얻기 위해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다는 걸 보좌관이라는 자리에서 보았었다. 개에게라도 권력의 옷을 입히면 그런 존재들은 그 앞에서 절을 할 게 분명했다.
  
  내가 법무장교로 시작할 때 처음 본 상관은 계급이 중령이었다. 장군이 되고 싶은 그는 계룡산의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대에 온 무당에게 물어보기도 하는 모습을 봤다. 법무감을 지낸 한 장군은 청와대를 찾아가 비굴할 정도로 벼슬 구걸을 해서 감사위원이 되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하던 분이 그 내막을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벼슬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위세가 대단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동아일보의 두 기자를 만났다. 한 명은 고교 후배이고 다른 한 명은 선배였다. 둘 다 강직한 성격을 가진 알려진 기자였다.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에서 저보고 홍보수석을 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단칼에 못한다고 했죠. 어제까지 계속 기사로 노무현을 까던 놈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칭찬해 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전해주는 친구에게 난 기자로 시작했으니까 기자로 끝을 맺겠다고 했어요.”
  
  후배는 그런 인격이었다. 그들과 같이 북한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그 후배는 사십 년 전 아버지가 입던 해군복 바지를 물려받아 입고 다니는 철저히 검약하는 품성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선배인 기자가 입을 열었다.
  
  “나도 전에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 김대중 때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거야. 그래서 거절했어. 그랬더니 다음에는 대통령과 밥이라도 한번 먹자는 거야. 그야 속셈이 뻔하지. 설득하려는 거지. 그럴 때 잘 사양해야 돼. 엉뚱하게 관직이나 탐하는 놈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면 인터뷰를 전제로 들어가. 그리고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는 바로 기사를 써버려.”
  
  그 두 명의 기자는 깨끗한 양심과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현대판 선비였다. 그런 말을 하는 사이 고교 후배인 기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덟 살짜리 아들에게서 온 것 같았다. 아들과 대화하는 그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 것 같았다. 후배가 통화가 끝난 후 내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팔굽혀펴기 상을 받았대요. 그 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린대요.”
  
  선비 기질을 가진 언론계의 두 거물은 기자로서 편집국장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퇴직했다. 날카로운 정권비판을 하는 그들을 이번에는 권력이 그대로 놔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이 세상의 모습이었다. 학교 선배가 되는 기자는 서울 근교에서 오랫동안 소나무를 심고 있다. 후배인 기자는 혼자 서울의 옛 터전을 다니며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보다 그 사다리가 어디에 놓여졌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 2020-09-08, 2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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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9-09 오전 9:02
그런분이 과거에는 있었군요
허지만 지금도 있는지는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민족성이 점점더 비겁하게 진화 하는거 같아서요
어찌 되었던 그런 분이 있었다는게 웬지 믿기 어운 현실인지라
  白丁   2020-09-08 오후 9:42
동아일보 기자 출신 중에는 이낙연 같은 인간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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