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중의 지옥'이었던 육군교도소 영창 체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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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십대 중반 법무장교가 되어 처음으로 눈 덮인 관악산 자락에 있는 수도군단 사령부 군법회의로 갔을 때였다. 그곳의 법무장교중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구속할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영창에 들어가 그 고통의 일부라도 겪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사령부 내에 있는 영창을 가 보았다. 사십 년 세월 저쪽의 당시 영창은 지옥이었다. 햇볕도 들지 않는 습기 차고 어둠침침한 바라크 건물이었다. 철창을 막은 짐승 우리 같은 감방 안 시멘트 바닥 위에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연히 그런 상황에 내몰리지 않는 이상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말도 할 수 없고 뭔가 읽을 수도 없다면 그게 더 고통일 것 같았다. 당시 전국의 군 죄수들이 모이는 육군교도소는 지옥 중의 지옥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곳을 가 본 적이 있다. 감방들이 마주보고 있는 사이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장교 출신 죄수 한 명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었다. 흰 얼굴을 가진 잘생긴 사십대쯤의 장교였다.
  
  “무슨 죄를 범했기에 이곳에 들어왔습니까?”
  내가 물었다.
  
  “사병들을 교육시키다가 한 사람을 보고 ‘너는 김일성을 닮은 것 같다’라고 말했죠. 그게 보고가 되어 김일성을 찬양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습니다.”
  
  반공으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언제 어디서 컴컴한 입을 벌린 절벽 밑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공기가 항상 주변을 감돌았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나는 변호사가 됐다. 인간이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서 바로 옆에 같이 있는 피고인이 된 사람을 변호하는데 그의 고통이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변호사란 잠시 그와 십자가를 같이 지면서 공감을 해 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이었다. 전원합의체 대법원판결이 어떻고 법리에 대한 학설이 어떻고를 장황하게 말하는 선배 변호사들이 많았다. 법정은 학계의 법률 세미나장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변호사가 판례를 말하지 않아도 판사들이 먼저 알아서 찾는 영역이었다.
  
  막대기 같이 둔감한 나는 스스로 피의자가 되고 피고인이 되어 보았다.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편집증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변호사가 상대방한테서 돈을 받고 불리하게 재판을 진행시켰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들은 고소광(狂)이기도 했다.
  
  그런 경우 양팔을 벌리고 그 십자가를 져 보았다. 간단한 사건이라도 변호사의 입장과 내가 피고인이 된 입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형사의 비아냥과 그가 주는 모멸에 나는 치를 떨었다. 검사의 냉기 서린 눈을 보면 그 방에는 냉장고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너는 뭔가 잘못한 게 있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담은 판사의 눈을 보면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고통을 가볍게라도 겪어야만 죄인이 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억울한 경우가 있었다. 억울함이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이겼다. 나는 도저히 나를 변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해 왔던 선배 변호사를 비싼 돈을 내고 선임했다. 그는 법원장 출신이기도 했다. 내가 변호사인 그에게 간절히 바란 것은 단 한 마디였다. 재판장 앞에서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확신을 가진 단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의 결백은 입증이 곤란하니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이익을 주었지 손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모든게 껍데기만 보고 형식만 그럴 듯했다. 그리고 선배 변호사는 내게 성공보수를 요구해 왔다. 그의 시각에는 그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변호사 계약서 조항에 배상액을 깎은 만큼 그중 일부를 성공보수로 하기로 했으니까. 겪어 보니까 변호사들의 경박한 장사속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선배 변호사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진정을 변호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예전의 현인들은 산에 오르거든 험한 비탈길을 견디고 눈을 밟거든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걸 견디라고 했다. 나의 직업이 그런 비탈길을 가고 다리를 지나치는 과정이었다.
[ 2020-08-31, 20: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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