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통령을 하고 싶습니다. 어떨까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얼마 전 퇴직한 장관이 몇 명 공무원과 차린 컨설팅회사 개업식에 갔었다. 모두 고교 동기였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친구들이었다. 같은 손에서 나온 손가락이 전부 크기가 다르듯이 고시를 합격했어도 마지막에 다다른 직급은 전부 달랐다. 그중 한 친구와 얘기하다가 그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일급까지밖에 못했지만.”
  
  장관을 한 친구가 옆에 있어 그는 상대적으로 작게 생각이 되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에는 장관이나 차관으로 선택되지 못한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젊은 시절 내게 일급공무원은 대단히 출세한 존재로 보였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 중앙정부의 공무원이 도지사나 시장 군수로 나갔다. 4급 공무원이 시장이나 군수를 했고 1급은 도지사를 했다. 보통사람이 보기에 특히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그 친구는 뛰어난 성공을 거둔 경우였다. 그러나 그는 상대적 박탈감에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변호사로서 지방의 군수와 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다. 군수를 보좌해서 여러 명의 공무원이 함께 있었다. 계약서가 작성되는 동안 공무원 중 책임자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실례지만 직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 순간 어떤 그늘이 드리우는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두 달 후면 정년으로 나갑니다. 평생을 노력했는데 올라가지 못하고 4급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회한이 배어 있었다.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경쟁하는 조직사회에서는 결국 누구나 회한이 남았다. 장관인 친구도 몇 달밖에 못한 장관이라고 허탈해 했었다. 삼십여 년 전 삼십대 초에 나는 서소문의 한 허름한 빌딩 구석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 윗층에는 고등학교 일 년 후배인 박원순 변호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시민단체를 해 보겠다고 했다. 그 길은 당시 변호사와는 비교되지 않는 수도자 같은 고행의 길이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고통을 나누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그가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약간의 후원금을 그에게 준 후 어느 겨울밤 그가 일하는 가게로 조용히 가 보았다. 먼지 묻은 헌 옷가지가 들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를 그가 허리를 구부린 채 콘크리트 바닥에서 밀어 옮기고 있었다. 숭고한 모습이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변호사였다. 많은 수입을 올리고 빌딩도 샀었다. 그걸 기부하고 자신은 스스로 만든 가난 속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계속 그런 성스러운 존재로 남기를 바랐다. 어느날 신문에 그가 도인같이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채 산에서 내려온 사진을 보았다. 긴 수염을 보면서 연출된 장면 같은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이벤트였다. 서울시장을 하는 그와 만났다. 전과는 다른 빛이 나는 얼굴이었다. 그는 서울시장 재선에서 거물인 정몽준을 이겼고 삼선에서 김문수를 이겼다. 한번은 그가 몇 명을 초청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대통령을 하고 싶습니다. 어떨까요?”
  그는 이미 마음속에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이 꽉 찬 것 같았다.
  
  “박 시장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 대통령 자리보다도 어떤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철학과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순간 그가 멈칫했다. 그 자리는 형식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도 나는 그에게 직접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같은 변호사끼리 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협치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 시장의 대답이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권력의지가 있어야 하고 시대조류가 떠받쳐 주어야 하고 또 다른 운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박 시장에게 목숨을 거는 그런 권력의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에둘러 대답을 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목숨을 걸었다. 김대중·김영삼 대통령도 야당투사로 자신들의 모든 걸 걸었던 사람이다. 전두환·노태우도 군사쿠데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걸었다. 그에게 과연 그런 권력의지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 후 박 시장과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자살로 허무하게 일생을 마친 사실을 방송을 보고 알았다. 시민운동가였던 그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갔다.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유를 누릴 줄도 알았다. 배가 부르거나 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고 겸손했었다. 그런 그에게 마귀가 대통령이라는 탐욕을 심어준 것 같았다. 그런 탐욕은 우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명복을 빈다.
  
[ 2020-08-26, 12: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청년백수   2020-08-27 오후 1:41
사도바울 처럼 보였다니 얼마나 위선의 극치적인 존재였길래 변호사님 마저도 넘어갈 정도였던가요. 저는 이 사람 자신의 적에게는 무척 냉혹하고, 남의 눈치를 요리조리 아주 잘 살피는 사람인줄 딱 알아봤습니다. 어쨌든 돌아가셨으니 명복을 빌 뿐입니다.
  白丁   2020-08-26 오후 9:26
박원순이 사도 바울???
  이중건   2020-08-26 오후 4:01
아주 큰 의미를 주네요. 박 시장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던 것도.
부디 건강장수하세요.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