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쥐의 고단한 삶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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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작은 쥐의 삶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사막 지역에서 태어난 쥐는 어느 날 엄마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잡혀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작은 쥐는 혼자 살아나가야 한다.
  
  처음으로 굴 밖으로 나갔다. 뭔가를 잡아먹을 능력이 아직 없었다. 쥐는 배가 고팠다. 작은 나뭇가지를 씹어 껍데기를 조금 먹었다. 다시 자기 굴로 들어가려다가 작은 쥐는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뱀이 자기 굴을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혀를 낼름거렸다.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쳤다.
  
  작은 쥐는 갈 곳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쥐는 굵은 선인장 위에 앉아있던 매의 시야(視野)에 걸려들었다. 날아서 오는 매를 피해 작은 쥐는 흐트러진 짐승의 뼈들 사이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간신히 매의 공격을 피하고 작은 쥐는 살아남았다. 이제는 돌아갈 굴이 없다.
  
  작은 쥐는 피곤한 몸을 쉴 장소를 찾았다. 인간들이 버리고 간 녹슨 깡통이 보였다. 그곳은 안식처가 될 것 같았다. 그 깡통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속에서 흉측한 전갈이 나왔다. 독침을 곤두세우고 다가들었다. 힘이 없는 작은 쥐는 다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속의 작은 깡통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휴식의 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그 작은 쥐의 가여운 모습을 보면서 험한 세상에 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화면이 바뀌고 편안해 보이는 아파트 안에서 사육되는 통통한 햄스터의 모습이 나온다. 넓고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햄스터의 생활은 안락하다. 주인이 깔아준 푹신푹신한 나무껍질 침대가 있고 먹을 것도 풍요하다. 그리고 안전하다.
  
  그런데 주인이 집을 비우고 나가자 햄스터의 이상한 행동이 시작됐다. 햄스터는 자기 집 천정의 구멍을 기어 나와 아파트 안을 탐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집 안에는 고양이도 있고 작은 개도 있다. 그런데도 호기심이 동한 햄스터는 소파의 등 위를 기어오르고 쿠션을 뛰어넘어 이리저리 살피고 다니고 있었다. 햄스터는 어쩌면 말썽을 찾아 나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에 사는 작은 쥐와 부자집에서 안전하게 사육되는 햄스터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면서 인간 세상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쥐 같은 고아 출신의 두 사람을 보았다. 한 사람은 어린 시절 깡통을 든 거지로 출발했다. 거지에서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은수저를 훔치는 좀도둑이 됐다. 감옥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면서 큰 도둑으로 변했다. 그의 징역 생활도 점점 길어졌다. 그는 나이 칠십이 넘어까지 평생 도둑질을 했고 어느새 삶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방울뱀이나 매에게 잡혀 먹힌 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세상에 먹혀버린 쥐였다.
  
  또다른 고아는 내 고교 동기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네 살 때 재래시장통에 버려졌다. 버리고 간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을 수 없었다. 그는 꼬마 때부터 시장통 양복쟁이의 심부름꾼을 했다. 양복쟁이 아저씨는 그를 중학교에 보내줬다. 그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가게에서 일하면서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다. 중학교 전체 졸업생 중에서 수석을 하자 양복쟁이 아저씨는 고등학교 입시를 쳐 보라고 했다. 그는 최고 명문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명문대학을 나와 평생 올곧은 언론인으로 살았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도 중동의 먼 지역으로 가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고 세상을 이긴 작은 쥐였다.
  
  나는 잠시 햄스터의 처지를 체험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원이던 호화유람선 퀸 엘리자베스호에 이주일간 탄 적이 있었다. 천국생활 같이 설계했다는 배 안의 생활이었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매일 먹고 마시고 춤추는 파티였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그런 편안함에 싫증을 느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말썽이나 사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내게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산다는 건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죠. 산다는 것 그게 뭔지 알기나 해요? 당신의 혁대를 끄르고 말썽을 찾아 나선다는 뜻입니다.’
  
  책 속에 있던 희랍인 죠르바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배에서 내려 귀국했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적당한 스트레스도 감사라고 생각하면서.​
  
  
  
  
[ 2020-08-25, 13: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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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8-26 오후 6:16
산다는 건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죠. 산다는 것 그게 뭔지 알기나 해요? 당신의 혁대를 끄르고 말썽을 찾아 나선다는 뜻입니다.’

책 속에 있던 희랍인 죠르바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배에서 내려 귀국했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적당한 스트레스도 감사라고 생각하면서.​

감탄이 나옵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글을 볼수 있어 기분이 좋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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