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廣場) 예배에 대한 생각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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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훈 목사라는 분이 주도하는 문재인 대통령 하야집회를 가 본 적이 있었다. 해가 져 어둠이 내릴 무렵 청와대 앞이었다. 여러 교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찬송가라기보다는 적을 무찌르려고 부르는 군가 같은 느낌이었다. 트럭의 적재함에 만든 단 위에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늙은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라기보다는 정치연설 같은 느낌이었다.
  
  밤 늦게 광화문 광장을 나가 보았다. 높은 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 문재인 하야 운동을 주관하는 전광훈 목사가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장성 출신부터 시작해서 사회 명사들이 보였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지만 예배라기보다는 내게는 정치 운동 같아 보였다. 나라를 잘되게 하기 위한 예배와 기도라면 굳이 그 장소를 택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대법원 앞에서도 마이크를 들고 여러 명과 함께 고래고래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교인들이 그 장소에 참석하는 걸 극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나라를 위한 기도라면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조용히 성스럽게 하면 되지 굳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소리지르고 악을 쓰면서 해야 되겠느냐는 논리였다.
  
  좌파들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백만 명을 광장에 끌어들이는 전술 전략을 택하곤 했다. 광우병 사태가 그랬다. 선동의 명분이었던 광우병 괴담의 진실에 상관없이 백만 명만 광장에 모이면 정권은 무너질 거라고 말하는 그들의 지휘자가 있었다. 그게 지방도시로만 번져 동시다발적 시위가 되면 국가권력은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소수의 경찰력이 힘을 쓰지 못하고 군인이 출동해도 과거같이 무력을 쓰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광주사태로 혼이 난 전두환은 6·10항쟁 때 겁을 먹고 무력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광장에 모인 군중이었다. 그들이 흥분한 원인에는 정체가 애매한 가짜뉴스와 유언비어가 많았다. 기독교에서도 좌파들이 사용하는 전술 전략을 그대로 모방해야 하는지 더구나 예배라고 하면서 험한 욕과 비난을 쏟아내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광장에서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굳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장소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원로목사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6·25전쟁 직전 북한에 살았던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검거되어 유치장에 있었다. 다음날이면 강제수용소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는 간수에게 마지막으로 다니던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올 테니까 잠시만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간수가 의외로 허락을 했다. 그는 한 시간을 걸어 다니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고 다시 감옥으로 갔다고 간증했었다. 그 목사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에 감동했었다.
  
  그러나 기도를 굳이 다니던 예배당에 가서 해야 했을까는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가 기도를 할 때 꼭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가야 하는 것일까. 남편을 지키면서 해가 떠오르는 창가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안 되는 것일까. 추운 겨울 가게를 지키는 점원이 예배를 드리고 싶을 때 그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바로 그곳이 성스러운 곳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럴 때는 내가 존경하는 백년 전에 살았던 현자 같던 노인에게 물어 본다. 그 노인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꽃과 사람도 하나님은 전부 틀리게 개성 있게 만드셨지. 하나님은 다양을 좋아하신단 말이네. 그렇다면 예배도 다양하게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하나님을 다른 방법으로 예배한다고 미워하면 안되네.’
  
  나의 생각이 좁은 것 같았다. 현직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많았었다. 어떻게든지 대통령이 불러주기만을 고대하고 그걸 훈장같이 자랑하는 목사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 같이 저항하고 목이 잘리는 반항자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면서 정치 불관여를 선언했다. 유대의 독립도 정권의 변혁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독으로 십자가를 지고 거기서 흘린 피로 로마제국을 점령했다. 내 머리의 작은 용량으로 세상을 재려고 하고 비판하려고 하는 게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 2020-08-24, 10: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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