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우상(偶像)으로 섬기면 불행해진다
“넉 달 고생해서 4년을 왕노릇 한다. 너 같으면 그걸 안하겠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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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다 몇 살 위인 아는 변호사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친했던 그는 여러 사람을 추천해서 거물 정치인이 되게 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했다. 한번은 그와 저녁에 음식점에서 곰탕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겨울의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에 재래시장으로 갔어요. 두툼한 코트를 입지 않고 일부러 얇은 양복을 입고 떨면서 갔죠. 편해 보이면 안돼요.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갔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내게 묻는 거에요. 당신은 텔레비전에도 많이 출연해 유명하고 변호사로 먹고 살 만한데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더라구요.”
  
  나도 속으로 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권력의 맛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무렵 정치 일번지라고 불려지는 종로구에서 같이 법무장교를 했던 고교 이년 선배가 당선됐다. 보좌관을 대동하고 법원에 나타난 그는 개선장군같이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국회의원을 왜 합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넉 달 고생해서 사년 간을 왕노릇 한다. 너 같으면 그걸 안하겠냐? 더구나 그건 로마로 통하는 길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거지. 별 황당한 질문을 다 하네.”
  
  그의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했다. 가까이 지내던 대학 후배인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TK 경상도당이라고 불리는 여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인 영암에서 여러 번 출마했다. 지역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지역구의 많은 유권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를 사람들이 칭찬하고 추켜세울 때면 그는 당장 당선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돌아서면 사람들은 말했다.
  “사람은 미남이고 똑똑한데 당(黨)이 틀려서 말이야.”
  
  그는 그래도 계속 불가능에 도전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삼성의료원 영안실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순간이었다. 바로 옆방 입구에 낯익은 작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계속 선거에 도전하던 그 후배였다. 깜짝 놀라 안을 들여다 보니 영정사진 안에서 그는 내 쪽을 향해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썰렁한 영안실이었다. 그가 내 나이 막 마흔 살이 됐을 때 나의 사무실에 와서 해 주었던 이런 말이 떠올랐다.
  
  “형 말이야, 출세하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아. 첫째는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잡는 거지. 둘째는 미국에 유학을 가서 변호사로 전문분야의 학위를 따오는 것이고 셋째는 도스토엡스키의 고전문학부터 시작해서 철학 역사의 인문학책들을 한 이십 년간 고시 공부할 때 같이 정독을 하면서 내공을 키우는 거야. 괜찮을 것 같지 않수?”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가 후배니까 아직 삼십대일 때였다. 그는 정치의 길로 나서고 나는 아버지가 남긴 누렇게 바랜 세계문학 전집을 읽기 시작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일부러 선거 실패의 아픔을 맞이하기도 싫다. 사람마다 용도가 다르고 그릇이 다르다. 책 속에서 만난 현인(賢人)은 내게 마음을 외부에만 돌리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잃고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욕망이란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욕망에 마음을 잃은 자는 일시적 쾌락에 빠져 고뇌에서 도피해도 실은 스스로 고뇌의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모신 변호사 국회의원은 그 후 선거에서 참패하고 그 후 나이 팔십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계속 도전했지만 당선되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가 되면 가족들 몰래 가서 등록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교대역 부근을 가다가 차창을 통해 길을 걸어가는 작달막한 남자를 보았다. 종로구에서 당선되어 왕이 된 듯한 기쁨을 누리던 선배였다. 그도 후에 여러 번 선거에서 낙선된 것 같았다. 노인이 된 그의 뒷모습이 우울하고 초라해 보였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모두들 이미 가지고 있는데 더 가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능력 있는 사람들이 욕망을 우상으로 섬기면 더 불행해지기도 한다. 행복과 불행은 포장에 불과한 외부적 지위에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마음을 외부로만 돌리지 말고 내면의 산을 오르려고 하는 게 평안을 얻는 길이 아닐까.
  
[ 2020-08-16, 14: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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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0-08-17 오후 3:50
묵묵히 좋은 글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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