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포로가 된 빈민굴 건달과 재벌 아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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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인 나의 숙부는 지독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상계동에 살았다. 창고같은 바라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 동네는 마치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백 명이 함께쓰는 공동변소는 겨울이면 문 앞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땅바닥에는 오줌이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 사회에서 전락(轉落)한 사람들이 모이는 빈민굴이었다. 중학생시절 나는 이따금씩 그곳에 가서 묵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공부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상당수가 일찍부터 불량배나 건달의 길을 가고 있었다. 산 위의 굴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기도 했다.
  
  내가 변호사가 되어 몇 년쯤 흘렀을 때 번들거리는 외제차 볼보를 타고 정장을 입은 몇 명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빈민굴인 상계동에서 자란 아이들 중 일부가 폭력조직의 두목이 되어 부하들의 변호를 부탁하러 온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어린시절 숙부집에 가서 있을 때 가끔씩 경찰을 보조하는 방범대원이 집집마다 들르곤 했다. 경찰봉을 허리에 차고 완장을 두른 그들의 눈은 독사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강한 저항감을 느꼈었다.
  
  그곳 아이들이 폭력조직을 만든 내면의 본능적인 저항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똘똘 뭉쳐 돈이 되는 건 뭐든지 다 한 것 같았다. 사람을 산속으로 납치해 협박하면서 돈을 받아주기도 하고 경마장 이권을 위해 건달간의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살인청부도 했다. 심지어는 뇌물을 먹이던 경찰서 형사들을 불러 무릎을 꿇리기도 했다. 그들은 원색적인 근육의 힘과 돈을 배경으로 또다른 천박한 권력에 취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몇 번 만난 후에 그 두목이라는 친구한테서 영화 속 건달같이 과시하고 싶어 하는 교만을 느꼈다. 빈민굴인 그 동네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또다른 사람이 우연히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처참하게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갈 길은 뻔한 것 같았어요. 노동자가 아니면 건달이었죠. 저는 건달이 싫었어요. 그렇다고 아버지 뒤를 따라 가난한 노동자가 되기도 싫었죠. 나름대로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마사회의 직원으로 취직해서 경마장 사무원으로 근무했어요. 어느날 경마장으로 외제승용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그 차 안에서 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어렸을 적 동네친구들이 나왔어요. 그 경마장을 접수하러 온 건달 신분이었죠. 건달이 된 친구들이 내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너 월급 몇푼이나 받느냐고 동정하는 눈빛으로 물어봤어요. 그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려고 공부하는 척 했느냐는 거죠. 그래도 저는 떳떳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원인모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끄는 재벌아들이 있었다. 공부보다는 건달들의 생활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내의 저택에서 살던 그는 그 바닥의 건달들을 거의 다 먹여 살린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외국의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정장에 볼사리노 모자를 쓰고 건달들 위에서 군림하는 모습이었다. 학교에서도 그의 심복같은 부하들이 항상 따랐다.
  
  개발연대인 칠십년대 초 그는 기부금을 내고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내에서 포커대회를 개최하고 상으로 캐딜락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많은 돈을 뉴욕의 금융시장에 묻어두기도 하고 또 남미의 여러나라에 대출해 주기도 하는 국제적인 큰 손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대규모 철강회사의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외부에서 보면 평생 넘치는 부자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어느날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부하노릇을 했던 동창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옆에서 부하같이 모시던 친구들이 힘들어 해도 그 친구는 도와줄 줄을 몰라. 그렇게 부자인데도 돈을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그런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아. 형제끼리도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지금까지도 소송을 벌이고 있어.”
  
  그 부자인 친구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민굴 출신인 상계파 조직폭력의 건달들이나 재벌 아들인 고교동창이나 다 욕망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괴로움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마음까지 좁게 되기 쉽다. 부유한 집에 태어나도 감사를 잊고 자만하고 타락하기 쉽다. 사람들은 각각 환경에 따라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 같다. 가난한 자도 마음이 풍요할 수 있고 부자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만족을 모르면 그 마음속에 수많은 고뇌를 만든다. 현인(賢人)들은 사람의 출생보다 바른마음과 행위의 꾸준한 축적으로 자기를 완성해 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 바른마음이라는 게 뭘까.
  
  
[ 2020-08-15, 11: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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