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당한 변호사…“당신 변호사 맞아?”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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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이십칠 년 전쯤이다. 상계동 지역의 조직폭력배 사건을 맡았다. 그곳은 오십 년 전쯤 서울 청계천등의 빈민을 집단 이주시킨 속칭 꼬방동네였다. 더러는 잘살던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떨어진 절벽 아래의 구덩이가 그곳이었다. 목수였던 작은아버지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 바라크 벽돌로 만든 작은 창고 같은 집들이 지붕을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수십 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변소가 따로 있고 물을 긷는 펌프가 동네 한가운데 있었다.
  
  그 동네의 불량소년들이 형님 동생하면서 자라 지역개발의 붐을 타고 폭력조직을 구성한 것이었다. 변호를 맡은 그들에게 본능적으로 애정을 가졌었다. 나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이미 악마가 되어 있었다. 청부살인을 하기도 하고 빚을 받아주고 이권에 개입하는 잔인한 폭력배가 되어 있었다. 지역의 경찰을 무릎 꿇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처절한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 그 동네로 가면 이따금씩 경찰을 보조하는 ‘방범’이라는 사람들이 경찰봉을 옆에 차고 골목을 돌아다녔다. 눈을 마주칠 때 보면 그들에게서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동네의 소년들은 이따금씩 경찰에 불려가 미결사건의 범인으로 만들어져 감옥에 가기도 했었다. 어쩌다 보는 나도 정부 권력으로 상징되는 달동네 경찰관에게 본능적으로 저항감을 가졌었다. 그들과 대치하던 불량소년들이 수채가에서 자라나는 독초같이 강한 존재가 되어 조직폭력을 만든 것이다. 그들에게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 조직의 보스가 되는 친구가 감옥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햇빛 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내게도 처자식이 있습니다. 그러니 변호비 받은 걸 돌려줬으면 합니다.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무슨 돈을 받아요?”
  
  그의 말은 은근한 협박이기도 했다. 나는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비틀린 나무는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 일 년 동안 전념해서 수고한 대가가 물거품으로 돌아갔었다.
  
  한 여성의 이혼소송을 맡은 적이 있었다. 남편의 학대와 심지어 아내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법정에 가서 공격하다 보니까 진실이 그게 아닌 걸 발견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 거짓인 것 같았다. 나는 거짓을 대신해 주는 변호사는 아니었다. 그 얼마 후 내가 배임죄로 고소를 당하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가 됐다.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돈을 받고 변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편집증을 가진 여자였다. 자기가 상상한 걸 사실로 확신했다. 워낙 집요하니까 판사들이 그녀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판사들은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겠지 하고 의심했다. 그리고 내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나는 작지 않은 그 금액을 지급해야 했다.
  
  사기범으로 기소되어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석방이 되어 찾아왔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정수기 세일즈를 하는데 하나 사달라고 부탁했다. 정수기를 사 줬다. 그 자리에서 그는 미국수표를 내게 건네주면서 아직 날짜가 안됐는데 돈이 워낙 필요해서 그러니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딱한 그가 안 된 것 같았다. 감옥 안에서도 열심히 영어소설을 읽던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지급일자에 그 수표를 은행에 넣었더니 무효의 가짜수표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당한 사기를 보고 "당신 변호사 맞아?"라고 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바보 노릇을 한 적도 있다. 아내가 홍천강가의 경치가 기가 막힌 장소의 땅을 사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뒤에 산과 잘생긴 바위가 있고 앞에 강이 보이는 탁 트인 정경이었다. 땅 주인이 그걸 사라고 권유했다. 그 땅은 소유자가 이미 금융기관에서 돈을 뽑을 만큼 뽑은 껍데기만 남은 땅이었다. 근저당권이 이중 삼중으로 설정되어 있는데도 경치 욕심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계약을 했었다. 땅의 소유자가 중도금을 요구할 무렵 내가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그 돈을 빌린 친구에게 되갚느라고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돈 때문에 손해를 입는 건 고통이지만 그걸 고통으로 느끼는 건 손해 이상의 고통이었다. 거기서 오는 배신감도 또 고통이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어두운 은혜라고 생각하며 고통을 삭히기도 했다.
  
[ 2020-07-24, 00: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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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7-24 오후 8:13
믿었던 자에게 배신 당하는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지요
그래도 저는 배신 하기 보다 당하는게 나아 보입니다
다행하게도 저는 아직 배신을 당한적은 있어도 한적은 없으니
조상신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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