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는 건 자네 공(功)이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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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측 소고기 협상대표인 민동석은 그 무렵 고독해 보였다. 분노한 군중은 그를 매국노라고 하면서 쫓아다녔다. 광장에서 그의 인형을 화형식에 처하기도 했다. 그의 휴대폰으로 쓰나미 같은 악의적인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언론은 그가 선한 뜻으로 한 말도 악의적으로 비틀어서 보도했다. 그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도망을 다녔다. 그런데도 지하철 안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나의 친구였다. 고시원 쪽방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영양가 없는 식당 밥을 먹고 살았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갑자기 그렇게 우박이 섞인 소나기가 쏟아질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인간은 철저하게 고독해진다. 평소에 알던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거나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살아났다. 그는 은퇴를 하고 요즈음 이따금씩 저녁에 만나 함께 동네식당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다. 식당 안은 퇴근한 회사원들이 소주와 고기를 시켜서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내가 한 마디 한다.
  
  “저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는 건 자네 공이야. 우리가 자랄 때는 일 년에 명절 때뿐이었잖아? 그래서 그런지 북한의 김일성도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먹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고 말이야.”
  
  “맞는 말이야.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북아현동 산동네 판잣집이었어. 나도 산 아래로 내려와 물지게를 지고 날랐었지. 정말 가난한 시절이었지.”
  
  그는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오면서 정말 부지런한 친구였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 한국가의 통상을 대표하는 자리까지 갔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렸었다. 세상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었다.
  
  그보다는 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할 때였다. 공보이사의 임무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바로 그에 대한 의견을 성명이나 논평 식으로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논평이 금기시되는 성역이 있었다. 그것은 언론과 노동, 종교 그리고 장애자의 분야였다. 나는 금기를 깨고 기자의 행태에 대해 한마디 했었다.
  
  다음날부터 언론의 벌떼같은 공격을 받았다. 여러 신문의 기사로 사설로 칼럼으로 나는 갈기갈기 찢어져 누더기 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어떤 유명지의 오래된 칼럼은 나를 정신병자로 몰기도 했다. 점심을 먹는데 텔레비전 뉴스의 자막에 내가 한 논평에 대한 비난이 뜨기도 했었다. 등 쪽에서 깊게 찔러오는 칼날이 느껴졌다. 변협의 전체 임원회의가 열렸다. 사회자겸 책임자는 임원 한 명 한 명들에게 나를 비판하라고 지시했다.
  
  성경 속의 군중이 한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나는 묵묵히 적대적인 눈빛과 비난들을 받았다. 속으로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전체적인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왜 마음대로 논평을 냈느냐고 항의가 올라오기도 했다. 말이 그렇지 전체 변호사의 의견을 수렴하려면 일 년이 지나도 불가능했다.
  
  법조 출입기자들이 단체행동을 벌여 변협으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나의 공개사과를 받고 나를 협회에서 해임시키려고 압력을 가했다. 나는 바른 일을 했고 사과할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해임당할 일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나의 먼 조상은 임금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건 바른 일이었다. 임금이 처벌을 하려고 하자 나의 조상 할아버지는 ‘선한 일을 하고 처벌이 온다면 달게 받겠소이다’라는 글을 남기고 아들과 함께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조선조에서 이백년을 숨어 살았던 집안이라고 들었다. 송시열의 도움으로 다시 세상 빛을 본 집안이기도 했다. 벼슬도 못하고 머슴보다 못한 신세였지만 그런 조상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는 건 그분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 없는 자의 생애는 평면이다. 도움이 측면의 둘러싼 사람에게서 온다. 그게 끊어지면 그는 즉시 죽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독을 두려워한다. 믿는 자의 생애는 수직적이다. 위에서부터 도움이 온다. 사람들의 도움이 끊어져도 의뢰할 곳이 있다. 그래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광우병사태 때 역적으로 몰리던 소고기협상대표 민동석이 요즈음은 포천의 수도원에서 단식을 하고 기도하는 데 몰입해 있는 것 같다. 내게 여러 번 소개했다. 때가 되면 한번 가봐야 하겠다.
  
[ 2020-07-17, 19: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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