電氣도 없던 대승사(大乘寺) 뒷방서 느낀 행복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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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십대 중반 점촌 쪽의 사불산에 있는 대승사라는 절에 묵은 적이 있다. 유명한 스님들이 묵던 오래된 고찰이었다.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방에서 한여름의 몇 달을 지낸 적이 있었다. 산이 깊어 인근 마을로 내려가는 데도 느릿한 내 걸음으로는 한참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그 절은 고시생들에게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많은 고시 합격자들이 나왔고 수석도 여러 명이라고 했다.
  
  나는 빨리 이 지겨운 터널을 통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젊은 놈이 룸펜 비슷하게 되어 깊은 산 속 절의 뒷방에 갇혀 있기보다는 빨리 다른 상황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 절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었다. 나는 저녁이면 책상에 좌우로 두 개의 촛불을 켜놓고 법서(法書)를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시경이었다. 밝은 달이 뜰의 바닥에 나뭇가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호지 문 앞으로 보이는 요사채의 기와지붕 위에서 달이 투명한 노란 빛을 비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떤 희열의 감정이 내 몸에 스며들었었다. 그냥 그 순간의 모습대로 살아도 기쁠 것 같다는 그런 강한 느낌이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내 상태가 최고의 지복 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의문이 떠올랐다. 깊은 산속 절간의 뒷방에서의 삶은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였다. 그렇게 살아도 기쁠 것 같다는 감정이 솟아 나오는 게 신기했다. 산다는 것은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얼마나 돈이 있느냐보다 즐거움을 기준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에 군대에 직업장교로 갔었다. 제복을 입고 좁은 사회에 사는 장교들은 진급에 목을 매고 있었다. 진급을 위해서 턱없는 인내와 굴종의 생활을 하는 걸 봤다. 그들은 모두 고급장교가 되는 꿈을 가지고 그 때에 가서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군에서 고시에 합격했다. 빨리 그곳을 나오고 싶은 생각도 컸었기 때문이다. 검찰청에서 검사직무대리를 몇 달간 해 보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빨간딱지가 붙은 사건기록이 몇 개 책상 위에 떨어져 있었다. 기록의 수만큼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죄수들이 끌려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록을 들추면 속에서 악취가 배어 나왔다. 살인, 강간 등 사회 밑바닥의 사건들이었다. 기록 안의 시체 사진들을 보면 먹은 게 올라올 것 같았다. 악취를 맡는 대신 묘한 마약 같은 요소도 있었다. 검사 방을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굽혔다. 그게 권력의 맛인지도 모른다.
  
  법원으로 파견근무를 가서 일 년 가까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같은 방에 있어도 판사끼리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조심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도 서열대로 걸어가고 음식점에서도 각자 자기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판결문을 쓰는 이면은 조용하지만 무서운 경쟁 사회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기도 했었다. 고시 공부를 할 때는 합격만 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여겼다. 내남없이 좀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판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신분을 상승시킨 후에 부잣집 딸을 아내로 맞이해서 경제적으로도 다른 계급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속된 야망이지만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도 했다. 그런데 끝이 없었다. 검사는 검사장이 되고 판사는 법원장이 되어야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일정한 금액이 되어야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들을 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지금과는 다른 더 좋은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형편이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현재 행복하지 않았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물통으로 만든 집에 살면서도 행복했다.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물어도 햇볕이나 가리지 말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국립대학 교수로 초청을 받아도 거절하고 안경을 깎는 일을 계속했다. 예수는 목수였고 바울은 천막 제조공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하면 정말 행복할까? 젊은 시절 깊은 산속의 절에서 이대로가 행복하다고 순간적인 희열을 느꼈던 때가 이따금씩 떠오른다.
  
  
  
  
[ 2020-06-16, 10: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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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17 오후 7:13
살만큼 산 늙은 나는 한주일에 한번은 꼭 행복(예배시간)하다!!! 편안하다!!! 이것이 행복이다!!!
  북한산   2020-06-17 오전 8:47
목수여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천막제조공이라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고위직이라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목수인데 불행하고 천막제조공인데 불행하고 고위직인데도 중요한 일을 올바로 결정하여 남에게 이익을 주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이지 너무 부정적으로 고위직은 거의 불행한 것처럼 세상을 봐서야 되겠습니까?세상에는 하위직도 필요하고 고위직도 필요한 것이고 똥푸는 사람도 필요한 것인데 결국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행불행이 결정된다고 봐야지 고위직은, 고위장교는 거의 불행하다는 듯이 자꾸 언급하는 것은 치우친 견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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