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천 검찰청 검사실인데 와서 도와줘”
오해를 받거나 후회되는 일들을 꼭 풀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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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 동네에서 같이 자라고 어른이 될 때까지 없으면 못살던 두 명의 친구가 있다. 그중 한 명은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천 근처의 송전탑 아래의 낡은 집에서 살았다. 그는 회사에 들어가 상사원으로 일을 하다가 독립해서 사업가가 됐다. 삼십대 말쯤 어느 날 밤이었다. 매일 새벽 첫 시간에 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그 준비로 꼼짝 못할 때였다. 그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기 인천 검찰청 검사실인데 와서 도와줘.”
  “어떤 내용인데?”
  “별거는 아냐. 통관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내용을 들어보니까 구속되거나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 검사실에서 조서를 작성하고 풀려나올 게 틀림없었다. 인천으로 갔다 오면 다음 날 새벽 생방송에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방송이라는 게 의외로 무거운 책임이었다.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
  
  변호사의 시각으로 지금 그의 옆에 입회해 주는 게 그가 죽고 사는 큰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단지 위로가 될 뿐이었다. 내가 그때 큰 실수를 했다. 그래도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한 것이다. 그 친구의 분노와 섭섭함을 알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한밤중에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가 많았다. 변호사라지만 가도 딱히 할 일이 없다. 지린내 나는 형사과 화장실 옆 대기실에서 함께 대기해 주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인연이 끊어져 나가곤 했다. 그 행동 하나로 그 친구는 마음의 끈을 끊어 버렸다. 후에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 탓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매일 같이 자고 먹고 뒹굴던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이십대 말에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내가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삼 년쯤 지났을 때 그가 한국으로 왔다. 돈 없이 이민을 간 그는 미국에서 고생이 많은 것 같았다. 세탁소 종업원으로 일하는데 양쪽 팔뚝에는 울긋불긋한 피부병이 나 있었다. 그는 내게 작은 세탁소를 하나 인수하게 십만 불을 달라고 했다. 그는 변호사가 된 나를 부자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한 달 사무실 유지도 힘들 때였다. 내게 돈이 있다면 주고 싶은 친구였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나는 미안해서 전화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연락을 끊었다. 속으로는 배신감과 섭섭함이 클 게 분명했다. 그는 내가 고시 공부하던 시절 암자로 짐을 들어다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친구를 잃었다.
  
  이십오 년 전쯤이다. 속칭 대도라고 하는 도둑을 변호할 때였다. 그는 부잣집만 터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상하게 피해자들이어야 할 부자들의 부탁이 간접적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고가의 보석이나 유가증권인 씨디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도둑에게 어떤 집 안방에 들어갔더니 장 뒤에 달러와 엔화 뭉치로 천정까지 벽을 쌓아 놓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건은 아무래도 정치적 실력자의 아들인 고교동창 집인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실력자이고 부잣집 아들이라도 성격이 호방하고 없는 친구들에게 비교적 관대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머니 이름이 어떻게 되시니?”
  피해자로 여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너 같은 놈이 우리 어머니 이름을 알아서 뭐하게?”
  예상 밖의 적대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가 겉으로 하던 친절한 모습과는 내면이 전혀 달랐던 것 같았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다음날 다른 부자 친구에게서 내게 전화가 왔다.
  
  “네가 언론에 어떻게 자기 집에 대해 발표할지 모르니까 막아달라고 부탁을 받았어. 그렇게 하지 마.”
  그 친구들은 내가 도둑을 변호하면서 부자들을 공격하는 좌파라고 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모르고 하는 오해였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인생의 강 넓은 하구에서 바다를 앞에 보며 빙빙 돌고 있는 물방울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자문해 본다.
  
  ‘만약 너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단 한 번의 전화통화만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지난날 오해를 받거나 후회되는 일들을 꼭 풀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나는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 2020-06-13, 10: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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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6-13 오후 5:21
어려워 보이십니다
워낙의 진퇴양난의 고민
제삼자가 봐도 해결방법이 곤란해 보입니다
엄선생님 같은 어려움도
저는이제 과거가 된거니 마음이 덜 무거워
견딜만 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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