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어떤 장례식에서 재벌그룹의 회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산하에 금융부터 시작해서 여러 분야의 회사들을 거느린 그룹이었다. 죽은 그의 아버지는 유명했던 원로 정치인이었다. 그가 명함을 꺼내 정중한 자세로 내게 주었다.

“회장님은 얼굴이 명함인데 뭘 굳이 줍니까?”
내가 받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어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또 경제인들의 모임을 비추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그의 얼굴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테헤란로에 있는 유리로 되어 있는 그의 금융그룹 빌딩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원로 경제인의 장례식이라 재계의 굵직굵직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식사 때가 되어 여러 사람이 함께 도시락을 먹게 됐다. 일급호텔에서 주문해온 고급도시락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았던 그 재벌그룹 회장이 내 도시락을 유심히 살피고 자기 것을 보더니 음식을 나르는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 말이죠, 내 도시락에는 생선회 두 점이 없어요. 어떻게 된 거죠?”

역시 부자는 치밀하고 조금도 빼앗기지 않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다른 회장이 나무젓가락으로 자기의 도시락에 있는 생선회 한 점을 주면서 말했다. “형님 제가 하나 드릴게요.”

그는 세계적인 운동기구를 만드는 회사의 오너였다.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내게 명함을 건넸던 그 회장이 명함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나의 말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회장이 된 걸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정치인으로 고속버스의 노선을 독점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그리고 여러 회사를 인수하면서 성장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 맏아들인 그가 회장이 된 것이다. 자신이 그룹을 많이 성장시켰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노력은 알아주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었다.

“밥을 먹었는데 후식 없나? 여기 아줌마 커피라도 없어요?”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그룹 회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는 역시 여러 회사를 거느리는 큰 그룹의 회장이었다. 유명세를 탄 그들의 생각이나 개인적인 행동은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그들을 보지 못한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이 그들의 명성을 과대하게 높여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상상의 열기구를 타고 높이 올라가 즐기는 면도 있는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나와 명함을 주고 인사를 나누었던 회장이 가사 도우미를 성추행했다는 사건이 기사로 나왔다. 구름 위에서 놀던 회장이 갑자기 재래시장 바닥에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알려진 이름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오래 전 지나가는 버스에 황우석 박사의 얼굴이 붙은 것을 보았다. 전 국민이 그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대통령으로 그를 추대하자는 말이 들끓고 있었다. 생명공학의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킨 그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위인으로 이름이 자자했다. 어느 날부터 그가 사기죄로 조사를 받으면서 그 역시 놀던 구름 위에서 속절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무렵 그를 한 식당에서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만난 적이 있었다. 과대망상을 한 대중이 그를 환호할 때 그는 성경 속 바울같이 옷을 찢고 아래도 내려오는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추켜올린다고 함부로 기류를 타고 올랐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 같았다.

국민들의 호감을 받던 많은 유명인들이 어느 날 어처구니없이 추락하는 걸 본다. 소설가 이외수 씨가 그렇고 시인 고은이 그렇고 부산시장이 그렇다. 그들을 보면서 옛사람의 이런 말이 떠오른다.

‘명성을 좇지 말아라. 명성이란 사람의 입술 위에 올라가서 사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한 모금의 담배 연기, 허무하게 스러지는 물거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