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니 내 앞에 시체가 있더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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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게는 천사였다. 그가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교회에서는 모범적인 신자였다. 그러나 어떤 날 밤이 되면 악마로 변했다. 혼자 낯선 동네로 가서 남의 집에 침입해서 강간을 하기도 하고 살인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평소의 선량한 남편으로 돌아와 교회에 나가서 기도도 하고 봉사도 했다. 천사 같은 그런 모습에 의심조차 받지 않던 그가 현장에 흘린 체액의 디엔에이 검사로 마침내 검거됐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이 그런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나는 무엇이 그런 극단적인 악마성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감옥 안의 그가 어느 날 접견을 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따금씩 밤 열한 시쯤이 되면 갑자기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듯한 금속성의 소리가 귀에 들려와요. 그럴 때면 마음속에 뭔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젊어서부터 그랬어요.”
  
  “나가서 뭘 하고 다녔어요?”
  “아주 아주 오래 전이었어요. 삼십 년쯤 됐을까. 그냥 나가서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어요. 그런데 앞에서 남자 두 사람이 서로 떠들면서 얘기하고 가더라구요. 말하는 게 저한테 자연스럽게 들렸죠. 그런데 그 내용 중에 제 고향을 욕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거에요.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서 분노가 치솟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계속 따라갔어요. 마지막에 골목길에서 그 사람들이 헤어지는 걸 봤죠. 제 고향을 욕하는 놈을 따라가다가 바닥에 있는 벽돌장을 들어서 뒷통수를 갈겼어요. 바닥에 쓰러진 그 사람의 머리통에 대고 계속 벽돌로 깠어요. 나중에는 묵을 치는 듯한 질척질척한 소리가 나더라구요. 그렇게 죽이기도 했어요.”
  
  그는 그 외에도 여러 건의 살인을 한 것 같았다. 그런 흉악범을 감옥 안에서 둘이 만날 때면 나는 공포영화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흉악범을 볼 때마다 나는 악마가 그의 영혼에 들어와 그를 흉기로 사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배가 고파 빵을 위해 범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원한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쾌감을 느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분노하는 순간이 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앞에 시체가 있더라고 하는 식이었다. 악마가 그들의 영혼에 다이너마이트 같은 분노를 심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 같기도 했다.
  
  법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범죄를 논리적으로 다루고 있다. 형벌로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의 뇌 속은 아예 그런 이성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인간의 마음이란 조정실 기능을 하는 인간 내면의 빈 공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귀신들이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묵는 집이기도 하다고 경전에 나와 있다. 인간은 단순히 속에 있는 악한 영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생물체에도 그런 게 있다. 연가시라는 기생충은 인간이나 동물을 숙주로 해서 그 속에서 살아간다. 연가시가 숙주의 몸 밖으로 나가 알을 낳을 때면 숙주의 생각을 움직여서 물로 가게 한다. 그리고 숙주가 물에 빠져 죽도록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한다. 연가시는 물에 빠져 죽은 숙주의 몸에서 나와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악마도 인간의 속에서 그렇게 조정을 하는 것 같다.
  
  악마는 보통사람들의 속에 있으면서 온갖 사악한 생각을 마음속에 불어넣는 것 같다. 싫증과 두려움을 유발하기도 하고 기도하는 마음 성경을 읽을 마음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악마는 눈에 보이는 도깨비 같은 물체가 아니다. 악령일 것이다. 나는 악령의 반대편에 성령이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성령이 전류같이 들어오면 어두웠던 나의 내면은 필라멘트가 되어 밝은 빛을 뿜어낼 것 같다. 그리고 악령이 몰래 깔아두었던 얼음같이 찬 마음들을 녹여 없애버릴 것이라고 믿는다. 내면에 숨어있는 악마를 지지하면 나는 악마가 된다. 성령을 받아들여 어두운 내 속에서 등불이 되게 하면 나는 천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 2020-05-08, 21: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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