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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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삼월 오일 오전이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아버지의 담당 의사가 내게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생명이 끝나간다는 소리였다. 나흘 전 밤에 아버지는 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올라갈 때는 살아서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못할 것 같구나.”
  
  아버지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중환자실 문틈으로 아버지를 살폈다. 아버지는 망연히 눈을 뜨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눈앞에 닥친 죽음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바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 다음 날부터 아버지의 눈빛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 물같이 고요한 표정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이 옆으로 모였다. 아버지는 손을 덮고 있던 시트를 들추더니 손짓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머니가 주춤주춤 다가가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나한테 시집을 와서 사십 년을 살았는데 수고 많았어. 내가 무섭게도 많이 했는데 미안해, 사랑했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어머니의 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내게 어머니와 주위 가난한 친척들을 돌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잠자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 죽음의 모습은 내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다.
  
  그때부터 이십칠 년이 흐른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나는 죽음을 앞에 둔 어머니의 옆에 있었다. 어느 자식이건 어머니의 죽음은 가장 애통한 장면이다. 마지막 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존재의 깊은 곳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와 아들로서 평생 함께 있던 장면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순간적으로 뇌리에 나타났다. 어린 내가 동네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꼭 안고 너무 이뻐서 깨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치원에 데리고 가게 하기 위해 세수를 시키면서 “흥 해” 하고 코를 풀어주기도 했다. 잠든 나를 업고 힘겹게 방으로 가던 모습도 떠올랐다. 어머니는 품팔이 뜨개질을 하고 나는 옆에서 헌 실에 초를 먹이며 함께 고생하던 모습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명문이던 경기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어머니가 너무 기뻐서 선생님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할 때의 모습이 생생했다.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기쁨으로 얼굴이 확 밝아져 어쩔 줄 모르던 어머니였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영원할 걸로 착각했다. 그런데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자식으로 인사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통곡을 하며 반복했다.
  “어머니,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어머니는 임종 직전까지 맑은 정신으로 나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갑자기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손을 들어 침대 옆에 서 있는 나의 팔을 쓰다듬었다. 최후의 사랑의 표시였다. 그리고 깊고 깊은 혼수상태로 들어갔다.
  
  “운명하셨습니다.”
  의사는 의학적인 죽음의 선고를 간결하게 했다. 젊은 여의사가 죽은 어머니를 시트로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병원직원이 이동침대를 준비해 올라 올 십여 분간 죽은 어머니와 입원실에서 둘만 있는 순간이 있었다.
  
  “어 머 니”
  내가 심장이 멈추어 버린 어머니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감사했어요, 그리고 사랑했어요’ 나의 마음이었다.
  
  “어 머 니”
  나는 다시 불렀다. 사랑했다고 어머니께 다시 마음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주말이면 놀러 오는 손녀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버릇같이 말한다.
  “다미야, 할아버지가 사랑해.”
  
  손녀는 나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나는 장난이 심한 손자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태윤아, 할아버지가 사랑한다.”
  
  네 살짜리 손자는 나를 보면서 알아듣는 듯 씩 웃는다. 조금은 쑥쓰러워도 친구나 아는 선배를 만나면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 어느 순간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 2020-04-23, 02: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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