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실패를 바라는 마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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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나오는 광야를 찾아가 이십 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하는 목사와 모압광야의 싯딤 나무 아래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레슬링을 하면서 싸움을 하고 나쁜 짓을 해서 퇴학을 당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신학대학을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에 가서도 마음속에 나쁜 뿌리는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책상 건너편의 신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졸고 있는 거예요. 자칫하면 책상에 머리를 박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내가 되물었다.
  
  “좀 더 졸면서 머리를 쾅 박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머리를 쿵 하고 책상에 찧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고 내가 할렐루야하고 외쳤죠. 정신차린 그 신학생이 나를 보더니 할렐루야는 그런 때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뭐라고 하더라구요. 성질이 났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주먹세례를 받지 않으시겠느냐고 하면서 끌고 가려고 했죠. 목을 잡고 패대기치는 레슬링 기술을 걸어 혼을 내려고 했어요. 제가 신학을 한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내남없이 타인의 실패를 바라고 시기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예수의 죽음도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세상적으로는 당시 성직자들의 시기심에 있지 않았을까. 나도 어려서부터 시기와 질투가 많았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다. 옆에 아주 총명한 아이가 있었다. 산수의 응용문제를 앞에 대하면 나의 뇌는 고장난 기계같이 전혀 작동을 안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문제마다 잠시 생각하다가는 ‘아’ 하고 그 답을 알아맞혔다. 순수하고 좋은 아이였다. 나는 질투가 나고 시기하다가 마지막은 그 아이를 미워했다.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 버렸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월등히 잘살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시기와 질투로 내가 불타버릴 것 같았다. 상대방을 이기기 불가능한 경우 어느새 나의 내면의 질투는 증오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 반대로 지독한 시기를 받은 적도 있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군에 장기 법무장교로 갔었다. 같은 처지의 장교 동기생 몇 명이 장교로 근무하면서 더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나도 그 속에 간신히 끼었다. 그때부터 시기와 질투가 현실의 방해 공작으로 노골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해군 법무장교로 있다가 고시에 합격한 동기생이 이런 말을 했다.
  
  “사법연수원을 가는 걸 허락해 주지 않는 거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관에게 양주 한 병을 들고 갔지. 그랬더니 바로 전 병과장교를 집합시켜놓고 그 양주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뇌물을 쓰는 놈이 있다고 망신을 주더라구.”
  
  그의 상관도 고시 공부를 하다가 실패하고 군 장기 법무장교가 된 사람이었다. 자기가 바라던 걸 이룬 부하를 보고 그 마음이 어땠을까는 당연히 짐작이 갔다. 연평도에 근무하던 동기생은 고시 삼차 면접을 봐야 하는데 부대에서 외출금지 명령을 내렸었다. 양주 한 병을 바쳤다 망신을 당한 동기생은 대법관을 지내고 대법원장으로 추대됐는데 사양한 분이다. 고시 면접을 차단당했던 동기생은 박정희 대통령 아들을 용서해준 재판장이었다. 공군 장교로 고시에 합격했던 동기생은 신문에 검사 발령까지 났는데 취소당하기도 했다. 오년의 의무복무를 마치면 제대할 수 있는데도 시기와 질투는 남들의 인생을 그렇게 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듯한 명분 속에는 항상 타인에 대한 시기와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걸 체험으로 알았다. 가난하고 무기력했던 내가 겪은 경험도 참담한 것이었다. 심지어 가까운 동기생이 나의 비리나 여성 관계를 내사했다. 거기 걸리면 인생이 파괴되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자기가 그렇게 절실하게 바라던 걸 옆의 사람이 해냈을 때 느끼는 절망과 끓어오르는 시기심이 어떤 것인지 겪었었다. 그들을 원망했지만 내가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시기를 하던 상대방에게 “네가 너무 부럽다”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내면의 시퍼랬던 시기가 증발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타인을 시기하고 실패를 바라고 떨어뜨리려는 마음을 관대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의 반은 얻은 셈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반은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 2020-03-13, 21: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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