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판례’의 은퇴(隱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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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전화가 왔다. 고교 동기인 서울대 윤 교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일등을 도맡아 하던 그가 부러웠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한 장면이 있다. 고등학교 이학년 시절 쉬는 시간이었다. 그는 복도 창가에 팔을 괴고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옆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물었다.
  
  “아까 수학 시간에 풀었던 적분 문제가 이상한 것 같아서 생각하고 있었어.”
  “넌 공부가 지겹지도 않니? 나는 수학이라면 머리가 띵해.”
  “아니야, 난 재미있어.”
  
  그는 순수한 표정으로 내게 정직하게 말했다. 그런 친구였다. 재미로 공부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서울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고 재학 중 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판사로 있을 때 다른 법관들은 그를 ‘걸어 다니는 판례’라고 별명 지었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그를 서울대학교에서 모셔갔었다. 그는 많은 논문을 쓰고 법대생들이 경전같이 읽는 교과서를 써냈다. 어느덧 그는 한국의 모든 법조인들의 선생님이 됐다. 나의 아파트 앞 지하철역 입구에서 윤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근처의 지하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해물파전 한 접시와 국수를 시켰다.
  
  “몇 달 전에 정년퇴직을 하고 엄 변호사 옆 건물의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어. 거기서 논문을 쓰려고 그래. 앞으로 더러 만나서 차도 마시고 그러자구.”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지 않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윤 교수는 친구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천재성을 가진 법학자였다. 판사로 다양한 재판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 인재는 계속 이 사회에서 활용을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를 세상에서 밀어낸 것이다. 가을이 오는 것보다 단풍을 먼저 보는 느낌이었다.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늙은 우리들을 발견한다.
  
  어제는 양수리 강가에서 혼자 조용히 텃밭을 가꾸고 사는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하던 그는 고시 공부 시절 고생을 꽤 한 편이었다. 이차는 금세 붙었는데 일차만 여러 번을 계속 떨어져 시험장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던 걸 기억한다. 변호사를 하면서도 몸이 불편해 남들보다 고생을 많이 했다. 환갑을 조금 넘기자 그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두물머리 근처에 암자 같은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었다.
  
  “혼자 살다가 고독사했을까 봐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 어떻게 지내냐?”
  내가 물었다.
  
  “전화해 줘서 정말 고마워.”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노인이 되어 외로운 우리들의 처지다.
  
  “강가에서 혼자 살면 우울증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자꾸 돌아다니고 집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많이 봐. 요새도 텃밭을 가꾸냐?”
  내가 그에게 권했다.
  
  “힘이 들어서 텃밭 가꾸는 것도 확 줄여버렸어. 나는 원래 소설이나 영화는 별로 보지 않았어. 그 대신 요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두 번 세 번 읽으니까 조금씩 알 것 같네.”
  
  그는 늙은 신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가도 고대 법대 동기 모임에는 이따금씩 참석한다. 그곳에는 젊은 시절을 공유한 같은 세대들 사이에 감도는 어떤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모습을 한 친구도 있고 얼굴에 깊은 고랑같은 주름이 잡힌 얼굴들도 보인다. 나를 비추는 또다른 거울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두들 이제는 인생 칠십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으로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다. 인생의 어스름밤이 다가오는 것을 자각한다. 이제는 동면을 앞둔 곤충같이 옷깃을 여미는 시간이다. 인생의 산등성이에서 마지막 태양의 빛이 금빛 테를 이루면서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 친구들은 잠시 볕을 쬐던 장소를 버리고 영원으로 가는 동행들이다.
  
  성경은 내게 그 이후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동면을 한 고치 속의 애벌레가 봄이 되면 구멍을 뚫고 나와 하나님이 주신 빛이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날개를 얻어 꽃향기의 바다 속을 춤추며 날아다니는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늙고 쭈글쭈글한 헌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몸을 얻어 보고 싶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그런 세상으로 가는 건 아닐까.
  
[ 2020-03-12, 09: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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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3 오후 6:21
쭈글쯔글한 껍떼기벗고 새로움을 주는 주님을 찾아서 가는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길임을 알았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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