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세대들은 모두 썩어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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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을 결심한 한 여인이 나의 법률사사무소를 찾아와서 말했다.
  
  “제 남편은 극도의 이기주의자입니다. 자기 외에는 몰라요. 허구헌 날 밤늦게 들어오고 잘 때도 침대 위에서 공부한다고 일본어책을 펴들고 ‘와다구시와’만 읊고 있어요. 도대체 그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런 남자들이 많습니다. 상담을 받는 변호사인 제가 바로 그런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반성했었다. 삼십대 중반쯤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생활영어를 익힌다고 방송을 보면서 굳어버린 혀로 영어회화를 했었다. 유학을 갔다 온 아이들은 지금도 나를 놀린다. 발음도 나쁘고 영어도 못하면서 아빠가 시간만 낭비했다고. 차라리 어린 자식들과 놀아주는 게 훨씬 좋은 아버지 아니었겠느냐고 한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말이 맞았다. 직업적으로 사용할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영어를 잘하고 싶어 했을까. 이혼소송을 하러 온 또 다른 오십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녁에 공원에서 남편의 팔을 잡고 산책을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미워하고 때려요.”
  
  나는 아내와 여행도 같이 다니고 저녁이면 같이 산책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곤 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여성에게는 그렇게 절실한 소망이기도 했다. 시집간 내 딸을 사위가 미워하고 때린다고 상상을 해 봤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를 것 같다. 귀하게 큰 남의 집 딸을 사랑해 주겠다고 하면서 데려와서 천대하면 안 된다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확인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는 평생 을에 속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조사에 입회하기 위해 밤중에 경찰서에 간 일이 있었다. 나보다는 연배가 한참 어려 보이는 담당 형사가 푸른 형광등 불빛 아래 철 책상 뒤에서 곱지 않은 눈길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는 공부 잘해서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를 한다 이거지. 나는 공부를 못해서 형사를 하고. 네가 옆에서 입회를 하면 나는 아주 나쁘게 조서를 만들거야. 그리고 변호사인 네가 여기 없으면 나는 많이 봐 줄 거야. 난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거든.”
  
  속에서 주먹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그의 영혼은 메마르고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조사받는 의뢰인을 위해 자제해야 했다.
  
  이십대 말쯤의 여성검사실에 가서 조사에 입회한 적이 있었다. 부잣집 딸인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이 명품이었다. 그런데 검사실이 영 지저분했다. 서기들과 함께 하는 옆의 검사방의 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안락의자가 보였고 그 위의 담요가 구겨진 채 간신히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검사의 책상 위는 온갖 잡동사니로 엉망진창이었다. 집안에서 공부한다고 위해만 주고 정리를 하는 것은 가르치지 않은 여성 같았다. 밖에 나와서도 자기 잠자리조차 단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 여성검사가 피의자 옆에서 입회하고 있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기 검찰을 보나 찾아오는 변호사들을 보나 당신 세대들은 모두 썩어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나는 그런 아이들이 검사로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의 판사들 중에는 ‘너희 변호사는 우리 때문에 밥을 먹고 살고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돈 있는 의뢰인의 갑질은 그에 못지않았다. 돈을 받아먹고 도대체 뭘 했냐고 닦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그때 인내하며 참는 게 살아가는 기술이기도 했다.
  
  변호사의 수입이라는 게 참 막연했다. 빚을 얻어서 사무실을 차렸다. 한 달 한 달 의뢰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적자의 위험을 안고 사는 작은 음식점과 마찬가지의 자영업이었다. 돈에 욕심을 내는 순간이면 한없이 비굴한 노예가 되어 속물들의 야유와 천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직업적 자존심을 잃지 않고 땀을 흘린 만큼 품삯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그래도 변호사라는 직업은 다른 힘든 직업에 비하면 고통이 고통도 아닌 것을 안다. 나는 자영업자, 물품판매원, 보험판매인, 공무원 등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하는 삶을 보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 현명함은 무엇인가. 모든 것에서 배우는 것이다. 굳셈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다. 풍부함은 무엇인가. 자기 소득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 2020-03-07, 22: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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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08 오후 5:35
배우는것이 현명한것!!! 있는것에 만족하는것이 풍부함!!! 힘이 있어도 참는것이 어른스럽기는해도 참기힘든 이지경은 힘있는자(국민)의 침묵이 잘못된것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감사! 감사! 감사!하며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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