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
쉬지 않으면 느린 소걸음도 천리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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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녀가 영어 레벨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요즈음은 초등학교에서 이미 영어는 어느 정도 마스터해야 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수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입시를 없애고 평준화를 해도 인간의 경쟁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내는 아이를 비싼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성적도 부모의 재력에 달렸다는 얘기였다. 할아버지인 나도 평생 경주마같이 트랙을 달려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다. 중학교 시절 시험 평가가 ‘상’ ‘중’ ‘하’로 나왔다. 성적표의 내 이름 아래에는 담임선생이 볼펜으로 ‘하’라고 적어 놓았었다. 나는 인간적으로 내가 하등품 내지 불량품이 된 느낌이 들었다. 중품이나 상품이 되기 위해 밤늦게까지 영어참고서를 암기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구체적인 등수가 프린트된 종이가 교실 벽에 붙었다. 나는 바닥이었다. 상위 십등 안에 드는 아이들에게는 페넌트와 메달이 수여되었다. 그 등수는 늙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사십대 초쯤 됐을 때였다. 나의 법률사무실로 고교 동창이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머리를 갸웃하며 말했다.
  
  “너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나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 힘든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될 수 있어? 변호사를 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전부 고등학교 때 성적이 베스트 텐 안에 들었는데 너는 아니잖아?”
  
  성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계급장이었다. 어려서부터 우리들의 삶은 치열한 경주였다. 그런 경주 속에서 나는 힘들었다. 노력을 해도 되지 않았다. 더 노력을 하는 독한 친구가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나는 의지도 체력도 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습자료의 영어 지문에 나타난 한 문장이 생각을 바꾸었다. 장애물이 있으면 극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우선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인생을 남의 음악이 아닌 자기의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걸어가라고 했다. 그 말이 쇠꼬챙이가 되어 나의 가슴에 깊게 꽂혔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내 수준에 맞게 한 단계 낮은 참고서들을 사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려는 학교의 기준을 무시하고 내 낮은 수준에 맞게 공부했다. 대학지망도 아예 한 등급 낮추었다. 허세를 부리다가 떨어지면 나만 골탕먹을 것 같았다. 학교 벽에 붙어있는 낮은 성적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합격했다.
  
  고시 공부를 할 때도 내 주제를 알려고 노력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나는 먼저 테이프를 끊을 인간이 아니었다. 수도 생활을 하는 스님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들은 나무의 열매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꾸준히 물만 준다고 했다. 때가 되면 열매는 저절로 열린다는 것이다. 소처럼 천천히 가라고 했다. 쉬지 않으면 느린 소걸음도 천리길을 간다고 했다.
  
  나는 고시도 마지막에 합격했다. 다행히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조급한 친구들 중에는 지쳐 떨어지거나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인생은 그 후에도 경주였다. 공직에 들어간 친구들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다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깊은 내면에서 그들과 같이 가면 너는 실패라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열등감 같기도 하고 미세한 성령의 음성 같기도 했다. 나는 삶의 방향을 일찌감치 다르게 잡았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고 마흔 살부터 세계를 흘러 다녔다. 평택에서 LNG 화물선을 타고 동지나해를 지나 싱가포르까지 갔다. 육중한 푸른 비늘을 무겁게 뒤치는 바다를 미끄러져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싱가포르에서 이태리 배를 갈아타고 인도양을 건너 에게해의 섬까지 가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낡은 열차를 타고 자작나무숲의 광막한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인간 여행을 하기도 하고 문학여행을 하기도 했다.
  
  밥을 얻을 얼마간의 지식이나 기술만 있다면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서 뭘 하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지상에서 벌었던 돈과 높은 지위를 자랑할 때 나는 그냥 잘 놀다 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2020-02-29, 01: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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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피리1   2020-02-29 오전 10:23
엄상익 변호사님! 좋은 글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홍표정   2020-02-29 오전 3:58
'밥만 해결되면 인생은 여행이다.' 취지의 말씀, 공감합니다. 저도 배 타 '빵' 해결하려다 유턴, 교수가 되어 실은 요즘 '여행' 기분에 삽니다. 사실, 이건 순전히 '요즘 느낌'입니다. 젊고 힘들어 땀흘렸던 시절을 뒤에 둔 먼후일, 시인 천상병의 '귀천'을 새삼 보고서야 새로 느꼈다 함이 옳겠습니다. 젊을 땐 '땀', 늙어 선 '여행'이 괜찮은 인생인가 합니다. 요즘 두 손주 손잡고 걷는 여행이 더 좋네요.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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