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변호사의 로또 복권이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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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준재벌 그룹의 대표이사는 나 때문에 주가가 하락됐으니 그 손해금 이백 억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그룹의 사위였던 판사는 나 때문에 판사를 못하게 됐다면서 거액의 위자료를 소송으로 청구했다. 내가 사건을 맡았던 살인범은 내가 변호사로서 업무상 비밀을 누설했다고 징역을 살게 하라고 검찰청에 고소를 했다. 갑자기 인생의 거친 폭우가 쏟아지고 나는 흙탕물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변호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을 책으로 써서 폭로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의심이 가득한 차디찬 눈길로 나를 파고들었다. 공중에서 던져지는 여러 개의 그물망을 피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일간지는 동시에 여러 개의 재판에 걸린 변호사인 나를 사회면에 보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네스북에 올리는 느낌일지 모르지만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판사들도 고발자인 나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건을 맡게 된 걸 후회하기도 했다.
  
  우연히 청부살인범의 변호를 맡았었다. 준재벌급 기업의 회장 부인이 살인을 청부한 사건이었다. 판사 사위의 불륜을 의심한 회장 부인이 엉뚱한 한 여대생을 죽게 한 것이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을 받던 회장 부인이 마침내 법정에 섰다. 재벌 측에서 고용한 로펌은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돈의 노예가 됐다. 진실을 왜곡시킬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어느 날 구치소로 갔더니 나의 의뢰인인 청부살인범이 이런 말을 했다.
  
  “사모님 측 변호사가 와서 미행 지시만 받았는데 우리가 중간에서 실수해서 죽였다고 진술하래요. 그러면 사모님은 무죄가 되고 저희도 과실치사로 금방 나간다고 그래요. 사모님은 파출부를 하는 집사람에게 그렇게 총대를 매 주면 오십억 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저희 부부는 그렇게 할 겁니다. 그 돈을 받으면 변호사님한테도 섭섭하지 않게 드릴게요.”
  
  살인범 두 명은 이미 살인 청부의 구체적인 내막을 변호사인 내게 적나라하게 말을 했었다. 진실은 살인범 두 명과 변호사인 나만 공유하는 셈이었다. 그 두 명은 돈을 받고 진실을 허위로 덮는 데 동조했다. 나만 유일한 진실의 목격자였다. 어느새 나의 속으로 스며든 마귀가 속삭였다.
  
  ‘큰 돈을 만져 볼 수 있는 기회야.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일이야. 명분도 충분하잖아? 변호사는 업무상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되잖아? 그러니 가만히만 있어. 이건 저절로 돈이 들어오는 변호사의 로또 복권이야. 이런 기회는 또 오지 않아.’
  
  그날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죽은 여대생이 떠올랐다. 팔뼈가 조각조각 부서져 있었다. 사위와의 관계를 자백하라고 엄청난 고문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머리통에는 일곱 발의 납탄이 박혀 있었다. 검사는 머리에 대못을 대고 망치로 두들긴 것과 같다고 법정에서 표현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시간을 아껴 쓰던 이십대의 꿈 많은 여성이었다. 추운 산 속에서 바로 죽지 못하고 여덟 시간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한창 피어나야 할 그 여대생이 차디찬 공동묘지의 그릇 속에 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한 맺힌 영혼이 내게 찾아와 간절히 호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입을 다물면 그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 있었다.
  
  나의 양심은 속에서 크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 맺힌 억울한 영혼을 놓고 그런 검은 거래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들을 모두 폭로했다. 그리고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선 것이다. 나는 이미 스스로 잔을 받았고 받은 잔을 비워야 했다. 구차하게 변명하기도 싫었다. 나의 폭로를 보고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를 어겼다고 비난하는 손가락질도 있었다. 혼자 잘난 체한다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잔을 받기로 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했다. 양심을 지키려고 했는데 왜 나를 죽이시려고 하느냐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에게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어둠의 터널도 그럭저럭 지났다. 다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그 엄마도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는 먼저 간 딸을 만나 가족이 웃으면서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 감옥에 있는 그 회장 부인도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세상은 깨닫는 사람의 소유다. 돈의 노예는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다. 깨달음이란 별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그냥 받아들임이 아닐까. 내게 남겨진 시간을 이제는 한 톨 한 톨 아끼며 살아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 2020-02-24, 16: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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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토   2020-02-24 오후 7:37
쉽지 않은 결단을 하셨다고 봅니다..직무윤리와 개인의 양심,종교적 신념등으로 인해 글에서 언급하셨듯이 많은 갈등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또한 일부에서 소영웅주의자라고 조롱과 비난도 퍼부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비록 소영웅주의적 모험심이라 비난하는 법조인들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개인적인 고난과 손해는 막심했고 사회적 파장또한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다하더라도 아주 오래동안 이 일이 회자되고 엄변호사님의 결단이 존중받기를 기원합니다.
  부산386   2020-02-24 오후 6:29
케네디 대통령은 사람을 평가하는 첫번째 덕목으로 용기를 들었는데, 변호사님은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지식인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면 이 세상은 밝아집니다. 최백호의 시인과 군인이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정답과오답   2020-02-24 오후 5:45
지금은 한국의 사법체계가 그때와 다를까요 ?
웬지 갈수록 더 더러워 지는거 같습니다
일본보다 사기 무고 고발이 200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대우리는 일본이 나쁘다고
지금도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쓴 개 돼지도 이보다는 나을거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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