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인물인 강증산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단체의 소송을 맡았던 적이 있다. 먼저 강증산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는 철저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머슴으로 가서 고생을 했다. 그러다 품삯을 더 받기 위해 정읍의 입암 쪽에 있는 산판에 들어가 벌목공을 했다. 그곳에서 동학도였던 다른 벌목공을 만나기도 한다.

어느 날부터 그는 조선 전역을 떠돌아다닌다. 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신 밭을 갈아주고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장날이면 대장간에 가서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걸어가는 냇가에 한 노인이 늘어져 있었다. 밥을 굶어 기운이 빠진 것이다. 그 옆에 있던 어린 손녀가 냇가에서 작은 고기를 잡아 할아버지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물고기를 다시 빼내 손녀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었다.

강증산은 유랑을 마치고 돌아와 고향의 시루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어떤 영적인 존재와 접신(接神)을 하게 된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태을주’라는 주문을 만들어 사람들이 끊임없이 암송하게 했다. 힘들었던 시절 그의 주문이 불길같이 정읍 일대에 퍼졌다. 그는 동학도들이 전주성을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할 때 뒤따라가서 말린 사람이었다. 양반들을 죽여 그 재산을 빼앗고 다시 양반이 되고 싶은 탐욕을 가지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던 고창경찰서의 일본인 순사는 태을주를 암송하는 사람들의 조직이 의병이라고 의심했다. 강증산은 고창경찰서에 구속되어 기둥에 묶인 채 몽둥이질을 당한다. 같은 감옥 안에 있는 그의 교인들은 왜 자신도 살리지 못하면서 도인(道人)인 체 했느냐고 비웃는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 그는 조선의 영혼을 개벽시키려고 했던 것 같았다. 성인들은 누구나 수많은 환난과 시험을 극복했다.

가난한 목수였던 예수는 십자가를 정면으로 맞이하면서 죽음을 통과했다. 부처는 버려진 옷을 입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사십오 년간 길 위에서 진리를 전파했다. 고아인 마호멧의 인생 역시 고난과 시련의 인생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배고픔을 참고 짐승을 돌보고 거리에서 얻어맞아 흙탕물 속에 처박히기도 했다. 성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이 세상에 완벽할 만큼 거룩한 질서가 존재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종교는 그런 곳은 이 세상이 아니고 다른 데 존재한다고 한다. 이 세상은 그런 곳으로 가기 위한 훈련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잠시 이곳을 거쳐 가야 하는 나그네나 외국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회주의는 이 땅에 평등이 이루어지는 낙원을 희망하는 사상이었다. 노동해방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있던 박노해 씨가 어느 날 구치소 버스 안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언제 그런 평등한 세상이 오느냐고. 그리고 그렇게 평등하다는 세상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천사 같은 사람들만 존재하느냐고. 그녀는 이기주의적 인간들은 그런 세상을 결코 만들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내가 소송을 맡았던 종교단체는 도인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그들의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기적인 간부 몇 명의 탐욕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이 세상에는 완벽할 만큼 거룩한 질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시험이나 환란이 없는 은밀한 장소는 없을까?

오십대 초반경 세계일주 유람선인 영국의 퀸엘리자베스 호를 탄 적이 있었다. 어떤 고통도 없고 즐거움만 있는 바다 위의 천국이라고 했다. 식당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종류별로 산같이 쌓여 있었다. 매일 최고의 공연과 화려한 파티가 끊임없이 열렸다. 선실 앞에 하인 같은 종업원이 대기하면서 서비스를 했다. 어떤 불편함도 사건도 없었다.

일주일이 흐르고 이 주일이 흐르자 그런 안락함 자체가 고통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따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도 돌발적인 사건을 요구했다. 온몸에 물감을 칠한 사람을 풀장에 빠뜨리고 그걸 방송으로 중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파티나 공연보다는 자기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어떤 남자 노인은 갑판의 모퉁이 그늘에서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 교사 출신이라는 영국 여성은 셰익스피어를 무료로 강의해 주겠다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시험이나 환난이 전혀 없는 아주 은밀한 장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