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의 독설(毒舌)
“이게 뭡니까? 수필입니까? 소설입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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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毒舌
오래 전 어떤 법정에서였다. 변호인석에 올라가 앉았을 때 재판장이 내가 맡은 피고인의 가족이 방청석에 있느냐고 찾았다. 가족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보면서 재판장이 말했다.
  
  “변론요지서를 보니까 변호사를 잘못 선임한 것 같아요. 이건 법률문서가 아니에요.”
  
  나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내가 실력이 없고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공개법정에서 그렇게 모욕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재판장의 쇠꼬챙이 같은 말에 심장을 뚫려 피가 철철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된 원인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 무렵 나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법률문서의 문장들은 죽은 글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틀에 박힌 생명이 없는 말들이었다. 그 안에는 법률보다 한 인간의 삶과 내면이 들어있어야 했다. 재판관은 글로 표현된 그런 것들을 보고 형을 선고해야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장들을 내 식으로 바꾼 것이다.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전혀 먹혀 들어 가지 않고 심한 거부반응이 나온 것이다. 봄비가 축축하게 내리던 어떤 날 또 다른 항소심 법정에서였다. 변호인석에 앉아 있는 내게 재판장이 내가 쓴 항소이유서를 들고 비웃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이게 뭡니까? 수필입니까? 소설입니까?”
  무슨 취지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바늘구멍 같은 눈으로 법률문서만 본 그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표지에 제목이 ‘항소이유서’라고 썼는데 재판장님은 그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내가 맞받아쳤다.
  
  “항소이유서인지는 알겠는데 장황하게 쓴 내용이 뭡니까?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는 덤벼드는 나를 재판장의 권위로 짓뭉개고 싶은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에서 말이 튀어나가고 있었다.
  
  “저는 그 내용을 여덟 글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더 줄이면 네 자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재판장이 되물었다.
  
  “정.상.참.작.바.랍.니.다.라는 게 여덟 글자죠. 뒤에 바랍니다라는 네 글자는 사실 필요 없는 거니까 그걸 생략하면 네 글자가 됩니다. 그래서 항소하는 거 아닙니까?”
  순간 재판장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만합시다.”
  
  두 재판장이 법정에서 내뱉은 경멸의 말에 나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말 한 마디는 대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 한 마디로 의뢰인의 나에 대한 믿음은 증발해 버렸다.
  
  나는 살아있는 법률문서를 만들고 싶었다. 변호사가 법원에 내는 글들은 법률토론보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과 범죄를 하게 된 동기나 딱한 사정이 담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사실을 말하면 판사는 법을 말하는 게 재판의 본질적인 역할 분담이 아닌가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미국의 대법원 판결들은 딱딱한 법률이 아니라 대부분 부드러운 하나의 단편소설이었다. 나는 나의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그런 내용을 담은 법률문서를 써냈다. 언론이 집중보도한 유괴범에 대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세상은 광화문 앞에서 그를 목매달아 처형해야 된다고 돌을 던졌다. 나는 결핵에 걸리고 가난의 바닥까지 갔던 착한 그의 모습을 하나의 단편소설로 만들어 변론서 안에 집어넣었다. 극도로 피곤하고 신경과민 상태에서도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고 피에로의 딸기코를 달고 노랑머리 가발을 쓴 채 아이들을 달랜 유괴범의 행동을 부각시켰다.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가 사죄하고 범인의 용서를 빈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아이를 두 명이나 유괴했던 그 범인이 석방됐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사건을 맡았던 담당 재판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정말 잘 쓰신 변론서입니다. 감동받았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자기의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상대방에게 저주 같은 말을 퍼붓는 사람들이 흔하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는 것은 그가 내뿜는 독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은 슬픔과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그런 독은 먹지 말고 바로 뱉어버려야 한다.
  
  
  
  
[ 2020-01-30, 10: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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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0-01-31 오전 7:52
嚴변호사님, 다음엔 한번 최남선 선생의 기미독립선언서 같은 문체로 써서 제출해 보십시요. 판사가 뭐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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