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와 금수저의 죽음
어둠에서 나왔다가 어둠 속으로, 밝음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운명.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변호사를 하면서 타고난 지능적인 범죄꾼을 봤다. 그는 도둑을 비웃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물건을 훔치느냐고 했다. 강도도 비웃었다. 머리가 나쁘니까 칼이라는 도구를 쓴다는 것이었다. 그는 머리를 쓰라고 했다. 그는 병원장에게 전화로 협박을 한 적이 있다. 그 병원에서 보관하는 링거 병에 청산가리 한 방울을 주사기로 넣었다고 한 것이다. 병원에서 즉각 그가 원하는 돈을 보냈다. 말이 나갈까봐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새로운 범죄 아이디어를 구상했다고 자랑했다. 재벌 회장의 조상 무덤을 파헤쳐서 뼈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돈을 안 바치면 종로의 빌딩 위에 그 뼈를 내던지겠다고 협박하면 알아서 돈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동시에 극단적인 상처도 있는 것 같았다. 한번은 그가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
  
  “저는 기생의 아들이에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고 기생 어머니는 실수로 임신한 거죠. 둘 다 나를 버렸어요. 나는 무책임한 섹스의 부산물이죠.”
  
  그는 보육원에서 천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의 내면에 있는 상처에서는 항상 피와 진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신을 치워줄 사람도 없었고 남긴 돈도 없었다. 너무 메마른 죽음이었다. 어둠에서 나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게 이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을 보았다. 아버지가 장관이던 친구가 있었다. 집이 부유하고 우수한 지능도 물려받았다.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서 학위도 얻었다. 재벌가에서 그를 사위로 맞이하고 사업의 후계자로 발표했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다. 그런 그가 장인인 재벌 회장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시골의 장판에서 약장수를 하면서 잡초 같이 살며 돈을 번 장인과 엘리트 귀공자와는 정서가 맞을 수가 없었다. 자존심 대 또다른 자존심의 승부가 파란 불꽃을 일으켰다. 금수저를 물고 나와 패배한 적이 없는 사위는 진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빌딩의 옥상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방법으로 패배를 피해가려고 했다. 영정사진 속에서도 그는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밝음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운명이었다.
  
  주위를 보면 내남없이 타고난 금수저 흙수저 출신이라는 운명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함경도 여인인 어머니는 6.25 전쟁의 피난지에서 나를 났다. 군인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잠시 휴가를 나왔다가 나를 임신시키고 부대로 돌아간 것이다. 임신한 어머니는 고구마 하나가 하루분의 식량이었다. 볏 짚단을 얻어 그걸 초가집 토담방 아궁이에 넣어 얼어 죽는 걸 면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가 세상에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그것도 전쟁통에 초가집 구석방에서 흙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스파르타식으로 나를 교육시켰다. 장작개비와 연탄집게로 머리통을 얻어맞기도 했다. 더러 발로 밟히고 따귀를 맞기도 했다. 입시공부를 하다가 끄덕끄덕 졸면 어머니는 양동이에 담긴 물을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입시나 고시를 치를 때면 어머니는 절에 기도를 가서 얼어붙은 계곡물에 들어가 아들의 합격을 기원했다. 아마도 흙수저를 불도가니 속에 넣어 굽는 과정인 것 같았다.
  
  어머니의 강인한 교육으로 천성이 게으르고 지능이 부족한 나는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를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불도가니에 들어가는 훈련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고통을 연습시켰던 것이다. 내가 피고가 직접 되어보지 않고는 의뢰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변호사 사무실은 한편으로는 세상의 인간 쓰레기들이 오는 곳이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트집과 중상모략으로 고소한다고 협박을 하는 악마들도 흔했다. 나는 그들의 모략을 피하지 않고 양팔을 벌리고 받아들였다. 십자가를 지는 연습이었다. 형사한테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검사 앞에서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판사들의 의심하는 싸늘한 눈길도 받아 보았다.
  
  내 의견을 글로 쓰면 종종 비판하는 사람들을 본다. 너는 변호사니까. 제대로 교육을 받았으니까. 인맥이 있으니까 등등이다. 위선자라는 비난도 따른다. 그런 나에게 내면의 힘을 주는 것은 성경이었다. 예수는 한 번도 말구유에서 태어난 가난이나 두 명의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머리 둘 곳조차 없던 예수보다는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금수저 은수저 같은 그런 껍데기 도금 포장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 2020-01-20, 1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