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에 무선조종 당하는 사람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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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를 하면서 죄지은 사람들을 보면 더러 사람은 악령에 의해 무선조종을 당하는 로봇 같은 인생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인과 강간을 여러 번 한 흉악범이 있었다. 겉으로는 정말 마음씨 고운 이웃의 아저씨였다. 착하게 생겼다. 이웃의 일들도 잘 도와주었다. 아내도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따금씩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악마로 변했다. 구치소에서 그를 만나면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날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금속성의 소리가 나요. 그럴 때는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범죄를 저지르게 됐어요. 골목길에 혼자 가는 사람을 벽돌로 뒤통수를 쳐서 죽인 적도 있는데 강도를 하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기분이 나빠서 죽였어요.”
  
  나는 그에게 악령이 든 것밖에는 다른 해석을 할 수 없었다. 범죄의 동기가 물질적 탐욕이 아니었다. 감방 안에서 헌신적인 그는 동료들에게 인기였다.
  
  몇 년 전 유대광야를 이십년 간 떠돌아 다녔다는 남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정읍 출신인 그는 이십대 말의 어느날 길을 가다가 신비한 체험을 겪었다고 했다. 갑자기 어떤 영이 몸 안으로 들어와 길바닥에서 몇 시간을 몸부림쳤다고 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이면서 불량했던 그는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성경 속의 그 광야로 떠났다. 그는 광야를 떠돌며 평생 기도를 하며 성경을 보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시리아 난민촌에서 전쟁고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당에게 귀신이 씌우는 일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악령이 아닌 성령에 들씌웠어요. 그리고 그 성령의 지시에 따라 인생길을 걸어왔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바로 옆에서 성령이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그 소리가 안 들립니까?”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 작은 수첩 한 권을 보여주었다. 표지에는 ‘성령 일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수시로 성령이 그에게 말해 주는 걸 기록해 놓는다고 했다. 그와 만나 몇 주간 보낼 때 작은 기적을 보았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 난민들이 떼를 지어 요르단으로 건너오는 길에 있는 난민촌을 지날 때였다. 그가 나를 데리고 난민촌 안에 있는 유엔구호기구 사무실로 갔다. 오십대쯤의 교수풍의 백인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그가 백인 남자에게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여기 난민촌에서 일을 할 테니 사무실을 하나 주시오.”
  
  그는 당연한 권리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백인 남자는 그 말에 어느 나라 어느 단체인지 그리고 근거가 되는 증빙서류들을 마련해 신청하라고 했다. 나는 그의 엉뚱한 행동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옆에서 성령(聖靈)이 내게 말씀하시는데 다시 한 번 똑같이 말하면 이 백인 남자가 사무실을 제공할 거라고 하는데요?”
  나는 그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백인 남자에게 다시 같은 말을 했다.
  
  “오케이.”
  백인 남자의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즉석에서 사무실 하나를 얻었다. 다음날 우리는 그 사무실 앞에 태극기를 달았다. 칠 년이 흐른 지금 난민촌 안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큰 강당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그가 그곳의 교장이다. 그는 성령이 시키는 대로 따라 일생 움직였다고 했다. 그 역시 영에 의해 무선조종되는 존재 같았다.
  
  성경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아주 간단한 사실이 발견된다. 악령(惡靈)이 들어간 인간이 있고 성령이 들어간 인간이 있다. 예수는 이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죽었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영으로 우리들에게 들어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한다. 그걸 성령이라고 하기도 한다. 예수가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고 성령으로 지금도 실존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한다. 신기한 사실은 성령에 씌우면 아무리 가난해도 배우지 못했어도 어떤 불행 속에서 비참한 처지에 있어도 평안함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가족에게 주님의 영을 내리시어 진리를 사모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십시오.’
  
  
  
  
[ 2020-01-18, 06: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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