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官職)보다 더 의미 있는 건 글을 남기는 일
그 많은 황제들과 왕들도 다 망각이라는 암흑의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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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을 지낸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그는 얼마 전 집안의 족보를 정리하는데 적을 게 꽤 많더라고 흐뭇해 했다. 차관을 하기도 하고 대사를 지냈고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게 족보에 올라갔다고 했다. 족보에는 조선 시대 조상들의 벼슬이 중요했다. 장관을 지낸 친구들은 가문의 영광스러운 인물이 되어 있다. 삼십대 중반 무렵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대학교수를 안전기획부장으로 임명했다. 그 사실을 통보하고 신임 안전기획부장을 모셔오는 차 안에서였다. 그가 신이나서 차의 앞자리에 앉은 보좌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사주팔자에 큰 관운이 있었어요. 그런데 환갑까지 됐는데도 아무 벼슬도 해 보지 못한 거에요. 그러다가 이제 고위관직이 내게 온 겁니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운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높은 관직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다. 아는 선배가 공기업인 도로공사사장이 되는 과정을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공기업 사장직을 공채를 한다고 하기에 지원서를 써서 청와대에 접수시켰지. 나름으로는 서울공대 토목과를 나와 해외를 다니면서 평생 토목공사에 인생을 바쳤으니까 기본 자격은 뒤떨어지지 않는 셈이지. 그런데 청와대 비서관이 하는 말이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의 세종대왕상 앞까지 도로공사 사장을 지원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셈이니까 가서 기다리라고 하는 거야. 정부의 좋은 자리라는 게 그렇다니까.”
  
  아주 솔직한 성품의 선배였다. 그는 퇴직 후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대통령과 같은 업종에 있던 인연으로 도로공사 사장이 됐어. 그런데 두 번 하려고 시도했다간 진정서가 날아가 큰 일 날 것 같더라구. 그래서 냉큼 나왔지.”
  
  자리 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이 가는 말 같았다. 철도공사 사장으로 간 친구가 은행그룹의 회장으로 간 친구들도 거의 비슷한 말을 했다. 나가라고 눈치를 줄 때 나가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를 해서 내동댕이친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도 공천과 당선을 위해서는 진흙밭의 개싸움을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무슨 범죄나 비리 아니면 선거법 위반 사실이 없나를 눈에 불을 켜고 살펴 그를 쓰러뜨려야 의원이 되는 게 현실이다. 나와 친한 대법관 한 명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판사가 재판만 잘한다고 대법관이 되나? 천만에 평소부터 항상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눈길을 그 자리에 돌리고 있어야 대법관이 될 수 있어.”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장 차관이나 대법관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똑똑하지 못한 경우 그 주위를 맴돌던 3류 인생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기도 했다. 내 나이 마흔 살 무렵이었다. 화두 같은 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었다.
  
  ‘너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사실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이 살았을 때 무엇을 했던 다 잊혀지기 마련이다. 옛날 옛적의 그 많은 황제들과 왕들도 다 망각이라는 암흑의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 살아있을 때는 높은 자리를 다투고 부를 다퉈도 무덤의 묘비들을 지나다가 보면 모두들 태어난 날과 죽은 날 두 개로 요약이 되는 것 같다. 조선의 정약용은 강진으로 귀양을 가서 목민심서라는 책을 썼다. 그의 형제 정약전은 흑산도로 쫓겨가서 물고기들을 관찰하고 ‘자산어보’라는 책을 썼다. 김만중은 ‘구운몽’을 쓰고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썼다. 누가 어떤 관직을 했는지는 망각되도 그들의 책은 지금까지 귀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있다.
  
  관직보다 더 의미 있는 건 글을 남기는 일 같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가 쓴 성경은 이천년을 살아남았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작은 사랑이기도 하다. 나의 할아버지는 한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나의 중학입시날은 영하 십도 가까운 추운 날이었다. 일흔 살의 할아버지가 교문 앞에 서서 떨고 있다가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나를 덥석 안아주던 사랑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사랑의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서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 죽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들꽃 향기 같은 작은 사랑의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너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인생의 황혼에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작은 사랑의 글을 직조하듯 성실히 쓰던 변호사입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 2020-01-17, 04: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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