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동영상 하나 보낼게 봐.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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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싱크대 앞에서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내 작은 서재에 소리쳤다.
  “여보 동영상 하나 보낼게 봐. 감동이야.”
  
  잠시 후 나는 카톡을 열어 아내가 보내준 영상을 튼다. 태극기가 보이고 붉게 아침이 열리는 동해바다가 나타난다. ‘독도 아리랑’이라는 노래의 연주가 애조를 띠고 들려오면서 글자가 밑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나님 우리 조국을 구원하소서. 한국은 못난 조선이 물려준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는 벼랑 끝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험난한 기아의 고개 속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이 없습니다. 전란 속에서도 등에 업은 아이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와 의식주 걱정이 끝나는 날이 앞에 있는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소서.’
  
  나라를 걱정하는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이었다. 뒤처진 자, 헐벗은 자, 노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성경 속의 예언자같이 그는 부르짖고 있다. 이 사회가 두 쪽으로 찢기는 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이웃 빌딩에서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는 칠십대의 변호사와 근처 곰탕집에서 함께 점심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변호사를 하면서 학자같이 조용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제 나이 또래는 전부 우파래요. 그러면서 생각이 다르면 전부 빨갱이 공산당놈이라고 욕을 해요. 어려서 한번 세뇌된 반공프레임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또 반대쪽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죄가 모두 한 계급이나 독재자 한 사람에게 있는 것같이 말하죠. 나의 불행은 모두 부자나 이제는 모두 죽어버린 친일파에게 있다는 거죠. 정신적으로는 그들도 썩어있으면서 말이죠. 강남좌파라고 하던 조국 장관 보세요.”
  
  나는 그의 말에 당연히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회색주의자라고 할까요? 좌도 우도 아니고 그냥 양심에 따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따라가는 입장이에요. 변호사를 사십 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 자신이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됐어요. 변호사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거죠. 누가 나쁘다고 하면서 대중이 돌을 던져도 그걸 보는 나의 캐릭터가 따로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는 곰탕을 먹으면서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요새 정국의 핵이 된 조국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가 교수를 했는지 강남좌파인지 관심 없어요. 그렇지만 검찰이 그 부인에 대해 피의자 신문도 하지 않고 기소를 해 버린 건 분명 뒤에 후회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게 바르게 가질 않아요.”
  
  정치가 세상을 흘러넘치고 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에 갔다가 광장으로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과 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서초동으로 몰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같은 나라에 살아도 이방인들인 것 같다. 여기에서는 정의가, 저기에서는 불의가 되고 있다. 그들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이성이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핏속을 흐르는 강한 증오의 감정인 것 같다. 나는 광장에서 독이 서린 표정들과 구호를 볼 때 섬뜩하다. 그렇게 독이 가득한 사람들이 과연 사회를 개선하고 국가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야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바로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시기에 사회의 원로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은 잔잔한 물결같이 사람들의 마음 기슭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어령 교수가 은퇴할 때 한 시사잡지와 인터뷰한 글 중 한 마디기 기억 저쪽에서 떠오른다. 낙엽은 아직 윤기가 있을 때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은유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는 더 늙고 암이라는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다. 그 천사 뒤에서 예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딸의 조용한 죽음을 보면서 이성주의자였던 그의 영혼은 성령(聖靈)을 맞이한 것 같다. 등불에 전류가 흐르면서 빛이 나듯이 그의 영(靈)은 이 사회에 더욱 빛을 뿜어내는 것 같다. 어제 저녁 중앙일보를 보다가 그가 하는 이런 말이 적혀 있는 걸 봤다.
  
  “나는 절대 병원에서 죽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내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죽을 겁니다. 평생 방해받지 않고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는 인류가 혼자 하는 수공업이 딱 하나 남았다고 했다. 그게 문학이라는 것이다. 방 안에서 혼자 하는 죄수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세상을 화해시키려는 그의 기도문이 나온 것 같다. 뜻있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인 것 같다.
  
[ 2019-12-25, 10: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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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포리   2020-01-03 오전 8:40
엄상익의 글이 항상 보편적으로 보이는 인간을 데려와 얘기를 전개하기 보다 어디서 찾아보기도 힘든 사람들을 데려와서 얘기를 하는 듯. 제가 표현하기로는 '엄상익은 좀 삐딱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라는 직함을 달고 살면서, 그래서 이런 글도 한 칼럼 받아서 올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약자'에 몰두하는 사람? 약자라는 이름의 좌를 보호하는 것도 이제 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이건만.
  고포리   2020-01-03 오전 8:36
회색주의자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국민으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치라는 것이 없는 무인도에서 홀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고 보시죠. 아직 생이 남아 있으니.
  1   2019-12-27 오후 6:56
삶이라느것!!! 죄 사함을 받고져 주님에게 부르짖는 혼자만의 내 일!!! 한사람,한사람 제몫을 다해 최선의 길을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점 점 많아지면 님의 나라가 될것으로 믿습니다!!! 감사! 감사! 또 감사하며!!!
  참좋은세상   2019-12-25 오후 11:31
열열(한) 선비?
  stargate   2019-12-25 오후 9:57
내가 아는 우파 인사들 중에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ㅜ조건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이나 글 중에 나오는 분은 특이한 주변 환경을 가진 분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좌파들 중에서 가장 흔한 부류는 조국과 같이 자신은 자본주의의
단물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말은 좌파 처럼 말하는 위선 좌파들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본인은 중도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스스로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 가치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오면 둘중에 어떤 것에 우선적 가치를 두어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중도라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냥 모르겠다고
뭉개고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중도라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뜻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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