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화가(畵家)
"차라리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셋방에서 고갱같이 죽을 때까지 그림만 그리려고 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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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원로화가의 이혼소송을 대리한 적이 있었다. 법정에 나타난 그의 아내는 남편을 대신해서 나간 나에게 결혼생활에 신물이 난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남편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살을 섞으며 오랫동안 함께 살고 아이들까지 컸는데 그렇게 인간이 싫을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며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생활비를 가져다주고는 수시로 냉장고를 열어봐요. 생활비를 쓴 걸 일일이 확인하는 거죠.”
  좁쌀 같은 남편이라는 소리였다. 그보다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 부인은 이런 말도 했다.
  
  “쓰레기 봉지가 집안에 한 나절 있는 걸 남편이 견디지 못해요. 왜 아침 일찍 가져다 버리지 않았느냐면서 잔소리를 하는 겁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요.”
  
  그 부인은 숨이 막혀 못 살겠다는 표정이었다. 남편은 질식할 것 같은 아내의 심정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갈라서는 마당에서 남편은 오히려 마음이 넉넉했다. 부인이 요구하는 대로 위자료를 주고 아파트도 내주었다. 남편은 작은 셋방 하나를 얻어서 나왔다. 이혼 후 그를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나는 왜 그렇게 부인을 감시하고 야박하게 했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법정에서 하는 형식적인 답변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집이 가난했던 저는 네 살 때부터 백묵을 주워서 땅바닥이나 동네 담벽에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그림만 그렸어요. 다행히 재능이 인정돼 미대를 갔죠. 졸업을 해도 궁핍한 그림쟁이는 먹고 살 수가 없더라구요. 백화점에 취직해서 미술실에 있었어요. 한번은 사장하고 청평을 갔는데 혼자 돌아올 일이 생겼어요. 사장이 버스 타고 가라고 하면서 동전 몇 개를 주더라구요. 그렇게 인색해야 부자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젊은 시절 저는 제가 길거리에서 쓰러져도 누구 한 사람 보살펴 줄 사람이 없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저히 절약하면서 살다보니까 아내에게 너무 메마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사람마다 다르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이십대였을 때였어요. 그때 가난한 부부가 하는 작은 출판사에 가서 삽화를 공짜로 그려줬어요. 남편은 소설가이고 아내는 시인이었죠. 그 남편은 사업능력이 없는지 성공을 못하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돌아앉아서 글만 쓰는 것 같더라구요. 그 소설가가 ‘태백산맥’을 써서 유명하게 된 조정래 씨예요. 제 집사람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좀더 참아줬으면 저도 성공했을지 모르는데.”
  
  그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가 말한 소설가 조정래 씨의 사업실패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고유한 능력을 준 것 같았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아니면 실패를 메시지로 보내나 보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정한 자기의 천직으로 돌아서면 그때 성공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혼소송을 대리했던 그가 덧붙였다.
  
  “혼자가 된 게 차라리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셋방에서 고갱같이 죽을 때까지 그림만 그리려고 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그림만 그리면 한 장이라도 완성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지도 모르죠.”
  
  독특한 운명의 예술가들이 많다. 증권 중개인을 하던 고갱은 사십대에 혼자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타히티 섬까지 흘러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부둣가로 나와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물감과 이젤을 사서 숲 속의 작업실로 가곤 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가 죽었다. 예술혼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전에 아내와 헤어진 화가를 만난 적이 있다. 아내가 도망가고 아들을 키우면서 화실에서 사는 화가를 만났었다. 혼자서 키우던 아들이 사건을 일으키자 화가인 아버지는 그림을 한 점 들고 와서 변호료로 주면서 아들의 변호를 맡아달라고 사정을 했었다. 그는 자기가 죽으면 그 그림이 값이 꽤 나갈 거라고 했다. 지금은 그 화가가 죽은 지 오래됐다. 그의 그림은 아직 나의 집 벽에 걸려있고 값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내가 이혼소송을 대리했던 그 화가는 내 할아버지의 인물화를 한 점 그려다 주었다. 그게 지금 내 방에 걸려있다. 낙타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사막을 횡단하다가 어느 날 조용히 죽어가듯 자기가 추구하는 길을 걷다가 조용히 잠드는 인생도 괜찮지 않을까. 완성을 하지 못했더라도.
  
  
  
[ 2019-12-24, 09: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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