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충성하면 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두 여인이 다투는 장면을 봤다. 한 여인은 자기 집안이 도시락 가게를 팔십년 해 왔다고 하면서 맛과 신용을 잃은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다른 여인은 이백년 전통의 목재상점을 내세웠다. 세월의 이끼가 끼도록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게 그들의 프라이드인 것 같았다. 우리와는 다른 특이한 사회 같았다. 초밥을 만드는 것도 바둑을 두는 것도 그들은 도(道)로 여기는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마다 독특한 재능과 직업들을 부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돌이나 나무를 다루는 사람, 쇠를 깎는 사람, 보석을 연마하는 등 수많은 재능들이 나온다. 가축을 치는 사람이나 사냥꾼, 음악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걸 천직이라고 하는 것 같다.
  
  신문을 읽다가 귀퉁이에 난 작은 글 하나를 봤다. 음악가 정경화 씨가 쓴 것이었다. 그녀는 바이올린과 함께 65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활 하나로 네 개의 현이 달린 작은 나무 악기를 울려 소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의 울림이 악기의 울림이 되고 공간의 울림이 되어 청중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녀는 음악 속에서 끝모를 우주를 보았고 신비함은 끝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어떤 경지에 간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이 평생을 한 가지에 몰두하면 거기서 무엇인가를 찾아 낼 수 있나 보다. 음악가 정경화 씨는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라는 작품에서 감동을 얻었었고 자신도 그렇게 소리를 빚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그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노인은 초가지붕 아래의 공방에서 평생 묵묵히 그릇을 빚었다. 아내가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가도 그는 인내하면서 타오르는 가마의 불길로 시선을 던진다. 욕망에 번뇌하지 말고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이었다.
  
  평생을 글에 전념한 사람이 만들어 낸 명작에는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긴 세월의 강을 흘러 바다 가까이 온 지금에야 깨달아지는 게 있다. 일찍 나 자신의 그릇과 몫을 알아차리고 천직에 전념했으면 보다 빨리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중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리석었던 나는 야망을 권력자나 부자가 되는 것으로 오해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은 칠판에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라고 써넣고 우리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키려고 독려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세상에 나올 때 부모란 환경이나 지능은 이미 평등하지 않았다. 나는 운명을 비키게 할 수 없었다. 운명이 나를 사로잡을 뿐이었다.
  
  한때 절망하고 무기력했던 적이 있다. 능력 없는 가난한 집 자식이 야망을 가진다는 것은 마치 말이 뒷다리를 들고 걸어가거나 피라미가 상어가 되는 헛된 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노래를 잘하면 가수 쪽을 향하고 그림을 그리면 화가를 바랐겠지만 아니었다. 기술자가 될 눈썰미도 가지지 못했다. 나는 내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나는 소심해서 마음을 열고 남과 교류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했다. 단순해서 남과 부딪칠 때가 많았다. 회사에 취직해도 일찍 목이 잘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도피처가 고시 낭인이 되는 일이었다. 이십대 시절의 반을 깊은 산속 암자의 뒷방이나 철지난 강가의 방갈로에서 살았다. 일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시험장만 가면 나는 주눅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공부선수 소리를 들어온 수재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눈에 불을 켠 채 필승을 다짐하는 전쟁터였다. 나는 영원히 실패로 끝날 고시 낭인의 운명을 예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한 사람이 화두 같은 말을 던져 주었다. 열매를 딸 생각을 하지 말고 매일 꾸준히 나무에 물만 주라고. 그는 법서를 읽고 또 읽으면 마지막에는 그 두꺼운 법서도 한마디의 말로 압축이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했다. 내게서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사라지고 매일 염불하듯 수도사가 만트라를 반복하듯 무심히 책을 읽었다. 타고난 재주가 없어도 조금의 인내만 있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껍던 법서가 어느 순간 몇 페이지의 얇은 책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왔다. 그때 고시에 합격했다. 한 가지 일에 미련할 정도로 매달리면 불쌍해서라도 하늘이 더러 봐 준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삼십대 무렵 잠시 공직에 있어 봤다. 리더십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장군 같이 남의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지도자적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리더십이나 인간관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몇 년의 공직생활에서 다시 확인했다. 개인법률사무실을 차리고 적막한 방에 틀어박혔다. 마음의 평안이 왔다. 나는 자유였다. 책상 위에 읽고 싶은 책들이 놓여 있는 게 행복했다. 조직사회는 힘들었다. 항상 옆이나 위를 의식해야 했다. 홀로 있게 되면서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돌이켜 보니 나는 소원을 이룬 것 같았다.
  
  유년의 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동네 만화방에 가서 빌려온 소설들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다가 어머니에게 걸리곤 했다. 그런 때면 내가 좋아하는 책만 실컷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포도 한 송이나 구운 오징어가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결혼 초 단칸셋방에 살 때도 촉촉하게 비가 오는 날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소설을 읽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석유난로에 하이면 한 그릇을 끓여 먹으면서 행복감에 젖었었다. 조용한 개인법률사무소는 그런 꿈의 마지막 실현이었다.
  
  일본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듯 나는 법률문서를 만드는 장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간판도 ‘문서공방’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의뢰인을 위한 변론서 안에 한 인간의 크고 작은 마음의 울림을 나타내 보려고 노력해 봤다. 더러 내가 처리한 사건을 재구성해서 소설이나 수필로 써 봤다. 그리고 그걸 ‘변론문학’이라고 나 혼자 이름을 지어 보았다. 뭐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을 산 게 아닐까 위로해 본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면 된다고 했다. 예수는 괜히 스스로 일을 만들어 바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네가 할 일은 그냥 예수인 나를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했다. 음악가 정경화 씨도 65년 동안 작은 악기를 만지는 한 가지 일에 충성하다 보니까 혹시 그분을 만난 게 아닐까. 그리고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활을 잡고 현을 스치게 한 건 아닐까.
[ 2019-10-30, 05: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1   2019-10-31 오후 5:43
작은 일이라도 정직히 원하는 자에게 주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 다 이루어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이 다시 명심하게하는 글 입니다!!! 감사! 감사! 감사하며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