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직업'을 찾은 사람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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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막연히 부러웠던 직업이 있었다. 약국이나 한약방이 좋아 보였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만두가게 아저씨가 혼자 일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혼자 자신의 조용한 가게 안에서 사는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드라마에 나오는 오퍼상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일보다는 혼자서 꾸려가는 단독 사무실이 자유로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장차 뭘 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성냥을 팔더라도 혼자 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길거리 성냥장사라는 말이 어머니의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대학 시절 변호사인 친구 아버지의 사무실을 가서 처음으로 개인법률사무소의 모습을 봤다. 사무실 안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수십 년 된 손때 묻은 나무책장 안에서 나오는 오래된 책의 향기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소박한 책상 위에서 사발시계가 째각째각 메마른 소리를 내며 시간의 벽을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일 년간 친구의 아버지가 있는 그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오전에 오면 암자의 뒷방 같은 사무실에서 책을 읽었다. 오후에는 글을 썼다. 의뢰인의 애환이나 사고가 타자된 몇 장의 종이에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생활은 안정이며 평화였다. 나도 개인법률사무소를 열고 그 안에서 시간의 강물을 흘러 내려왔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는 또래의 변호사들도 많았다.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들이 되기도 했다. 나는 친구의 아버지인 선배 변호사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은신처인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작은 글을 썼다. 더러 인생의 가시덤불 속에서 고뇌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하나님에게 그렇게 듣는 귀를 달라고 기도했다. 순간에 타는 불꽃 같은 직업보다는 죽기 전날까지 담담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얼마 전 한 수필집을 읽다가 이준익 영화감독 아들의 얘기가 나오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들은 대학교 일학년 때 아버지에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직업이 뭘까를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대답은 ‘먹는 장사’였다. 아들은 대학을 그만두고 냉면집, 한식, 일식, 중식당 주방을 돌아다니면서 일했다. 그릇 닦는 일부터 시작해서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그 아들은 온몸으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육점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인 이준익 감독은 항상 웃는 얼굴의 아들 표정을 말하면서 그게 행복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던 또래들이 이제는 바다로 들어가기 전 물방울이 넓은 강 하구에서 빙빙 돌 듯이 무료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세상과 부딪치기 시작한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한다. 영화감독의 아들같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직업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혜였다.
  
  얼마 전 한 청년이 내게 인생 상담을 하러 왔다. 유학을 하고 돌아온 그 청년은 부대찌개 집을 하고 있었다. 최고의 국물을 뽑고 좋은 만두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 연구하고 만두를 빚었다. 맛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점심 저녁 시간이면 그 청년의 가게는 손님들로 들끓었다. 그러던 청년이 갑자기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미 강한 열망이 들어있는 그의 표정이었다. 세상을 살아보면 가을에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듯 공무원같이 조직에 있던 친구들이 비교적 빨리 사회라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왔다. 정년이라는 제도 때문이었다. 반면에 조그만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소박하게 살던 친구들이 뒤늦게까지 변함없이 사는 모습을 본다.
  
  삼십대 때 회사를 그만두고 칼국수 가게를 차린 고교 동창이 있었다. 처음에 얻은 좁고 소박한 가게를 육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 남모르게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던 그는 나이든 지금 훨씬 행복해 하는 것 같다. 자기만의 숙련된 기술과 자신의 왕국인 가게 안에서 그는 행복하다. 가로수 길에서 커피점을 하면서 빵을 만드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가 있다. 한밤중이 되면 혼자서 팥을 깨끗한 물에 씻어 끓이면서 주걱을 휘젓고 있는 그는 행복해 보인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자기가 새로 만든 빵을 자랑하고 이태리에 가서 배워온 아이스크림 기술을 말하면서 으쓱해 한다. 그는 괜히 젊은 날 국회의원을 하려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내게 푸념을 하기도 했다. 가진 재산으로 치면 부자인데도 그는 밤 늦게까지 반죽과 대화를 하고 있다. 행복이란 그런 게 아닐까.
  
  얼마 전 중국의 한 부자가 마약 밀매로 처형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재산을 모은 그는 더 벌려는 욕심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다가 체포됐다고 한다. 처형장에 끌려가면서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가게 하나만 가지고 가족과 평안하게 사는건데---”하면서 후회를 하더라고 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내가 아는 전 대법관 부부의 아들은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다. 국회의원을 지냈던 선배 변호사는 아들이 하는 미니 마트에서 김밥도 팔고 삶은 계란도 팔고 있다. 몇 년 전 한 원로법관이 나를 강남의 한 레스토랑으로 끌고 갔다. 쉐프 차림의 청년이 테이블로 나와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원로법관은 법대를 나온 아들이 쉐프가 됐다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내게 말했다. 아들을 위해서 법관 아버지가 영업을 담당한 것 같았다. 돌아와서 나의 이름이 들어있는 개인 법률소 간판을 쳐다본다. 삼십 년이 넘게 작은 사무실을 꾸려왔다. 마지막까지 자기가 하는 일상의 일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닐까.
  
[ 2019-10-23, 21: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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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24 오후 6:34
마지막까지 자기가 하는 일상의 일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받은 소명입니다!!! 감사! 감사!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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