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모르던 여교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판사를 하다가 명문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았다. 미모에 현직 검사장이 남편이었다. 재산도 넉넉했다. 어려서부터 공부 선수라는 소리를 들어온 그녀는 학생들을 다루는 방법이 좀 미숙했던 것 같다. 사례를 들 때 검사 남편이 처리한 사건을 얘기하고 결혼 때 받은 커다란 다이아를 자랑같이 말하기도 했다. 법률 이론을 말하다가 종종 “이것도 몰라요?”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교수의 그런 행동에 대해 여학생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여교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여교수를 흠모하는 여학생이 한 명이 있었다. 그 여교수와 식사도 하고 인생 얘기도 하면서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교수는 그 학생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금방 잊어버렸다. 그 여학생은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시간을 써가면서 열심히 부탁하는 일을 했는데 교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여교수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일을 끝내고 부탁했던 사실조차도 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학생이 섭섭한 마음으로 교수에게 한 마디 했다.
  
  “벌써 그렇게 처리하셨으면 말씀이라도 해 주시죠.”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너에게 다 보고해야 하니?”
  
  다른 일에 예민해 있던 여교수가 발칵했다. 여학생의 마음에 피멍이 생겼다. 여학생은 원망과 욕이 담긴 메시지를 여교수에게 보냈다. 여교수가 노발대발했다. 다음날 교수실을 찾아간 여학생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여교수는 탁자 위에 있던 주스잔을 들어 여학생에게 뿌리려고 했다. 그 사실이 학생들에게 알려지자 분노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여교수의 핸드폰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교수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가득했다. 여교수의 남편인 검사는 그 여학생을 구속했다. 변호를 맡았던 내가 그 여학생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였다. 구속까지 시킨 여교수나 그 남편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인내의 한계를 넘은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싸움은 대학 내의 이념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 여교수는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간주된 것 같다. 대학 내 이념 서클에서 준엄한 경고를 담은 붉은 공문이 나의 법률사무소로 보내져 왔다. 마지막에는 ‘해방 45년’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 여교수의 돈 자랑, 권력 자랑을 철저히 파괴시키라는 지령이었다. 얼마 후 고위직 법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여교수가 과거 동료였는데 변호사로서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상처받은 여학생이나 그 가족은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불길은 이미 다른 대학과 사법연수원까지 번지고 있었다. 싸움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투쟁을 하는 양상으로 변했다. 대학의 단과대별로 의견서가 법정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중간에 서 있던 변호사인 나는 엄청난 오해와 고통을 받았다. 의심의 눈으로 변해버린 여학생과 그 가족은 나의 사무장이 변론서류를 그 여교수에게 빼돌리고 그 명령을 따라 변조했다고 고소했다. 늙은 사무장이 검찰에 소환되어 곤혹을 당했다. 그 가족은 변호사인 나까지도 방송국 시사프로에 고발했다. 방송국의 이름난 진행자가 사실확인을 위해 연락이 왔다. 나는 대충의 얘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 방송국 피디나 제작진도 고소를 하겠네요. 조심해야겠네요.”
  
  좋은 결말을 내려다가 현실의 격류에 휘말려 고생한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을 통해 내가 사는 현실의 이면을 본다. 겸손을 모르는 접시물 같이 얕은 인격을 가진 있는 인간 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무심히 상처를 준다.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못 가져서 질투로 비틀린 인간들이 돌을 던진다. 증오와 증오가 부딪쳐 퍼런 불꽃을 일으키는 세상이다. 부자 같지만 그들의 영혼은 메마르고 철저히 가난하다.
  
  없는 쪽은 정의와 평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내면은 증오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개개인의 메마른 영혼이 자신의 현 상황을 하나님이 보내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촉촉해 질 때 세상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 2019-09-22, 1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