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사과(謝過)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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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이 가시가 되어 오랫동안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대충 이십 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선배 변호사가 국선변호를 맡아 하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나를 찾아와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사건을 의뢰했다. 국선변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들 학비를 대고 가족이 생활해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나는 그 돈을 덥석 받았다. 작은 수임료였지만 내게는 그 돈도 아쉬웠다. 사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그 사건에 손을 댄 선배 변호사가 사선변호인이 되어 이익을 봐야 했다. 나는 남의 밥그릇을 빼앗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 셈이었다.
  
  어떤 경험이 떠올랐다. 병아리 변호사로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한 사건을 맡게 됐다. 구치소에 가서 접견을 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선배 변호사가 옆으로 왔다. 그는 자기가 사건을 맡게 됐다고 통보했다. 해임당한 걸 알게 된 나는 구치소 문을 나오면서 입맛이 썼다. 그런 걸 알면서 남의 사건을 뺏는 양심에 꺼리는 짓을 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미리 알려줄 용기도 없었다. 법정에 나가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선배가 변호를 하기 위해 덜래덜래 법정으로 왔다가 나를 보았다. 그는 순간 상황을 눈치챘다. 그의 눈에 낭패감과 함께 순간 섭섭해 하는 기운이 어렸다.
  
  “엄 변호사, 미리 말이나 해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하며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이 이래야 하나 회의가 됐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알고 한 일이다. 형식적인 사과는 위선이었다. 그 일이 양심이라는 우물의 맨 밑바닥에서 앙금이 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육십대 중반을 넘긴 내가 텅 빈 지하철 2호선의 경로석에 앉아 공책에 요약한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다. 건너편 좌석에 칠십대 중반을 넘긴 노인이 보였다. 이마와 뺨에 골 깊은 주름이 나 있었다. 그 노인이 얼핏 나를 보았다.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히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노인의 눈매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아무래도 그 선배 변호사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순간 망설였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두 개의 내가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뭘 그래?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그냥 지나치면 되지.’
  죽을 때까지 다시 볼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마음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아.’
  망설이는 순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가 역에 도착해서 나가버리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밤의 텅 빈 지하철은 레일 위를 구르는 바퀴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에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000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네, 그런데요?”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는 나를 몰라보고 있었다.
  
  “저 엄상익 변호삽니다.”
  “아, 그러세요? 나도 아까 얼핏 눈이 마주쳤을 때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변해서 알아보지 못했어요.”
  
  이름은 항상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얼굴은 시간이 풍화시켜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일을 말하면서 정말 잘못됐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 하십니까? 저도 경쟁을 하면서 남의 사건을 가져오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변호사업이라는 게 다 그런 거죠.”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양심에 박혔던 가시가 순간 뽑혀버린 느낌이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도 어느새 일흔여섯 노인이 됐어요. 지금도 친구가 죽어서 문상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예요.”
  그의 표정에 얼핏 죽음을 앞둔 노년의 그림자가 어렸다.
  
  “지금도 축구를 하시고 일을 하시나요?”
  그는 중년에도 팀을 짜서 열심히 학교운동장을 빌려 축구를 즐기던 스포츠맨이었다.
  
  “그럼요, 지금도 한 주에 한 번은 운동장에 나가 볼을 찹니다. 동부법원 앞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했는데 법원이 떠나고 변호사 사무실들도 다 옮긴 지금도 내가 있던 사무실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사건이 하나씩 들어오기도 해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일하다가 죽으려고요.”
  
  죽을 때까지 천직에 종사하는 것은 행복이었다. 그날 밤 그와의 만남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기회였다.
  
  
  
[ 2019-09-07, 11: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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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22 오후 5:50
"20년만의 사과"참 감사한 말씀 입니다!!! 얼마가됬든 잘못을 사과하는것은 감사할일입니다!!! 항상 따뜻한 글에 감사드리며 건투를 빕니다!!!
  정답과오답   2019-09-07 오후 7:40
아직도 전철을 이용하시는군요
전철 이용하는 변호사
엄 선생님 말고는 거의 없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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