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을 읽는 소년
모든 경전(經典)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 기슭의 한 길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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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안에서였다. 눈이 새까맣고 코가 오똑한 열 살쯤의 외국인 소년이 빨간 표지의 작은 책을 펼치고 읽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까 기하학적 무늬의 아랍 문자였다. 호기심으로 그 소년에게 영어로 물어보았다.
  
  “무슨 책을 읽고 있니?”
  “코랜”
  그 소년이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이라는 소리였다.
  
  “재미있니?”
  호기심에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로봇이나 만화영화가 좋을 나이에 소년은 경전을 스스로 읽고 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소년의 아버지인 듯한 아랍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친근감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문득 이십 년 전쯤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 새벽 거리를 걷고 있었다. 빈 택시들이 도로가에 정차해 있었다. 한 택시 옆을 지나갈 때였다. 핸들 위에 코란을 놓고 읽는 기사의 경건한 모습이 보였다. 한 인간의 영혼을 만드는 게 경전인 것 같다. 이 세상을 떠난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읽으면 그는 지금도 한여름 암자에서 방석이 흐르는 땀에 젖도록 불경을 암송하다가 계곡물에 몸을 담고 선정에 들어있다.
  
  사람마다 그를 만드는 책이 있다. 대학 졸업 무렵 내가 가야산의 한 암자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옆방에는 운동권 출신으로 수배를 당하고 도피중인 고교 후배가 있었다. 그는 방에서 열심히 자본론과 모택동 사상을 읽고 러시아 혁명사 중국 혁명사 불란서 혁명사들을 읽고 있었다. 그 책들은 그를 혁명가로 만들고 있었다. 경전도 아니고 사상 서적도 아니고 현실의 밥이 나오는 공무원 자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달달 외워야 하는 속물인 내가 왠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달성이 막연한 관념에 선동되어 운동가에게 끌려가는 대중이 되기에 내 처지가 너무 각박했었다. 성공해도 혁명의 과실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몇 명에게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역사였다.
  
  나의 경우는 성경을 읽게 된 조금 신비한 체험이 있다. 삼십대 중반 무렵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뜬금없이 ‘성경을 읽어라’라고 하는 소리가 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생각인가 하면서 그냥 뭉갰다. 잠시 후 또 그런 감동이 전류같이 왔다. 퇴근 때 서점에 들러 성경 한 권을 사 가지고 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교양에도 유익하고 글을 쓸 때도 인용하면 좋겠다는 세상적인 시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의지 뒤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확 밀어냈다. 벌떡 일어나 차를 몰고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지하서점으로 갔다. 성경 코너에 노란색 표지의 성경 한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친 듯이 그걸 읽기 시작했다. 읽는 게 아니라 읽혀지는 것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건과 말씀들이 밀물이 되어 머리속 이성의 방파제를 넘쳐 흘러들어왔다. 이익이 아니라 고난이 함께 따라왔다. 어느 날 우연히 신체검사를 하던 의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암이라고 말해 주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환자로 있을 때였다. 병원강당에 위문을 온 사람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강당 구석으로 가 앉았었다. 낯익은 중견 여성 탤런트가 간증을 하고 있었다.
  
  “저는 어디 가든지 성경을 가지고 다닙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복사해서 낱장으로 가지고 다닙니다. 차 안이던가 사람을 기다리는 커피숍에서 토막시간이 나면 성경을 암송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눈이 내리듯 어떤 환희 같은 평온이 마음 벌판에 하얗게 내리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그 탤런트의 말이 마음속 땅에 떨어졌다. 그 말대로 했다. 씨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수목이 되어 내면의 벌판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것 같았다. 육체가 먹을 것을 원하듯 정신도 음식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음식도 지역 풍토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시절 고시 공부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많은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선(禪)이나 노장사상을 읽기도 했다. 한 친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 ‘논어’와 ‘신약전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경전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 기슭의 한 길이 아닐까. 정상에 올라가면 달이 보이기는 모두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 세상이 아닌 허공에 걸려있는 그 달 자체에 대해서다. 나는 달로 상징된 진리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로 대입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공자님은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부처님은 인간은 죽지 않을 수 없다면서 생로병사의 법을 설파하셨다. 예수는 천국에는 너희들이 살 집이 있다고 하면서 내가 먼저 가서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혹시 천국이 그 달이라는 존재 아닐까. 그냥 평범한 호기심으로 떠올려 본 생각이다.
  
  
  
  
[ 2019-09-06, 17: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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