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보병학교 진중문고(陣中文庫)에서 만난 ‘리빠똥 장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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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문열 씨의 서재를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이문열 씨가 ‘리빠똥 장군’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김용성 씨가 그 소설을 쓰고 군사 정권 시절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군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글이니까요.”
  
  리빠똥이란 똥파리 같은 더러운 놈이라고 야유하는 의미였다. 이상하게도 짧은 그 소설은 나의 머릿속에 화석같이 각인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힘든 시절 고통받는 장소에서 읽어서인지도 모른다. 무더위로 세상이 찜통 같던 1978년 8월 말이었다. 나는 미루던 군에 장기 법무장교로 입대해서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연병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으로 옷에 소금버캐가 끼어도 정신적으로는 뭔가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막사 한 구석에 있는 철제 캐비닛에 몇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게 진중문고라고 해서 훈련받는 군인들이 읽으라는 책이었다. 그중에 페이퍼 북 형태로 ‘리빠똥 장군’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내무반 청소를 마치면 이삼십 분의 쉴 시간이 있었다. 그때 그 소설을 읽었다. 딱딱한 누룽지를 입 속에 넣고 조금씩 녹여 먹듯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주인공 리빠똥 장군은 자신의 진급을 위해서 부하를 학대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부하들이 머물고 있는 작전지에까지 포격명령을 내리는 성격이었다. 거기에 대위 계급장을 단 법무장교가 지프차를 타고 나타난다. 단정하게 입은 군복에 지성적인 얼굴이었다. 리빠똥 장군의 계급과 원칙과 법의 싸움으로 그 소설을 이해했다.
  
  그 소설은 법무장교가 된 내게 군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철책선이 있던 전방 보병사단으로 배치됐다. 소설처럼 연대장들 중에는 별을 어깨에 달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라도 할 사람들이 있었다. 부하들을 시켜 조직적으로 쌀과 기름, 병사들의 부식으로 나오는 닭고기를 뒤로 팔아먹는 대령이 있었다. 그 소설이 나의 행동규범이었다.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을 단정하게 입고 장교의 상징인 권총을 차고 부정부패가 발견된 연대장을 만나 따졌다. 보안부대와 헌병대와 유착한 조직적인 부정이었다.
  
  사단장은 그런 부정이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중대장급 이상 전 지휘관이 모이는 회의에서 사단장 옆의 상석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그 연대장의 비리에 대해 차트를 펴며 하나하나 발표했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폭로하면 지휘권을 가진 사단장도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게 군대 내부의 언론기능일 수도 있었다. 리빠똥 장군을 쓴 작가가 지향하는 것처럼 인간성을 찾고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대위인 법무장교 대 헌병대 보안대 그리고 사단의 고급장교를 포함한 기존 조직과의 싸움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까. 사단장이 휴가를 간 틈을 이용해서 연대 보급관인 소령과 대위 그리고 상사 등 관련자를 구속했다. 사단이 벌컥 뒤집혔다. 파멸될 수도 있는 여러 보복이 돌아왔다. 군법회의 사건처리 중 내가 뇌물을 먹었다는 모함이 육군본부까지 올라가 서울에 와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리빠동 장군’이라는 짧은 소설 한 편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감화력의 결과였다. 그 소설을 쓴 김용성 씨도 성경 속 예언자 같이 군대사회를 묘사했다가 고통을 받았다. 그런 게 작가의 의무 아닐까.
  
  
  
[ 2019-08-31, 01: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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