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판사를 하기 힘들어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혼자 골방에서 공부만 한 내가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말이죠.＂ 35년 전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옆자리에 다리가 불편한 여성 연수생이 앉아 있었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재원이었다. 얼굴도 예뻤다. 그녀는 법서(法書)들이 가득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사법연수원이 있는 서초동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곤 했다. 신체의 결함을 공부로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집중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맹수 같은 파란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연수원 자료실 계단에서 약한 다리 때문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걸 보기도 했다. 고통보다 수치를 더 아파하는 그녀를 보고 외면해 주기도 했다.

그녀는 좋은 성적을 얻어 판사가 됐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판사실을 찾아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기록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아픈 다리를 끌면서 그녀는 이 세상에서 책과 기록의 광야를 건너는 순례자였다. 그녀가 책상 위에 펼쳐진 사건기록을 가리키면서 내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말 판사를 하기 힘들어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혼자 골방에서 공부만 한 내가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말이죠. 남들처럼 사랑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가족도 가지고 울어보기도 해야 하는데 난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요.”

그렇게 속을 털어놓는 그녀의 얼굴에는 슬픈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녀가 덧붙였다.
“난 말이죠. 하나님이 이 한 다리만 성하게 해 주신다면 거지나 창녀가 되도 행복하겠어.”

그녀의 가슴에 맺힌 절실함이 물이 되어 그대로 나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몇 년 후 바람결에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 법원에 근무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불편한 다리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 다리가 불편한 또 한 명의 여성을 감옥 안에서 만났다. 소아마비가 걸린 딸을 부모는 고아원에 가져다 버렸다. 그녀는 나이가 들자 고아원을 나와 한 종교단체를 찾아갔다. 그곳에 가서 기도하면 다리를 고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녀는 그 단체에 들어가 청소도 하고 밥도 지어주면서 기적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의 다리는 고쳐지지 않았다. 기도원을 나온 그녀는 영등포역 앞에서 낮에는 껌을 팔고 저녁이면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했다. 밤이면 역 안에 있는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다리를 절룩이니까 세상은 창녀로도 써 주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그녀는 일부러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노점상 앞에 놓인 티셔츠를 몇 개 훔쳐 감옥으로 가곤 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해주는 감옥이 더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한 감옥생활만 해도 이십 년이 넘은 것 같았다. 칡뿌리 같이 질긴 그녀의 목숨은 이미 일흔 살 가까웠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접촉하게 된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다 보면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불행들에 압도되어 정서적으로 소진되는 것을 느낀다. 그걸 ‘연민피로(憐憫疲勞)’라고 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평정심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것들은 인간인 내가 어쩔 수 없는 섭리의 일환으로 넘겨버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같이 세상의 죄와 고통을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많은 불행을 보면서 정상적인 몸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걸 배운다. 좁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보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를 알게 된다. 건강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학(自虐)을 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보석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처지대로 감사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인생의 꽃이 피어나는 건 아닐까. 내가 본 두 여성 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