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남 모르게 그 집안을 도와준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 집에서 내가 죽어가고 있는 사실을 안 거야. 그 집 가족들이 회의를 하고 아들인 청년이 (肝 이식) 자원을 한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 후 죽는다면 나는 정리해야 할 것들이 뭘까. 오래 전에 선배 한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해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자기가 죽기 전에 밥을 한번 꼭 사고 싶은 사람 중에 내가 있다는 것이었다. 금년에는 판사를 하던 분이 나를 찾아왔었다. 나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자기의 버킷 리스트에 있다고 고백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남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죽음에 대비하는데 나는 항상 주춤거리고 위축되어 구석을 찾는 그늘진 영혼이었다. 인생에서 사랑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몰랐다. 인생의 겨울이 닥쳐온 육십대 중반의 나이였다. 늦가을의 나목같이 잎을 훌훌 털어버리고 겨울을 향해 양팔을 벌릴 때다. 90대 나이의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전성기라고 하지만 위로의 말씀 같기도 하다. 나도 은혜를 받았던 소중했던 친구들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더 늦기 전에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면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시작이다.

나는 기억의 서랍을 열어본다. 아련한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봄이다. 새로 반 편성이 되고 짝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작달막한 덩치에 눈에서 매서운 빛이 나는 친구가 짝이 됐다.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그는 반장이 됐다.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데 반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야, 나 생물 노트가 없는데 좀 빌려줄래?”
반장인 그는 우리 집 위치를 물었다. 한 시간쯤 후에 어떤 남자가 거미줄 같은 골목길 안쪽의 우리 집 녹슨 철문 사이로 안을 기웃거렸다. 친구가 올 시간인데 다른 사람이 온 것이다.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저, 회장님 기산데요, 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해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1970년 그 당시 도로에는 거의 차가 없었다. 장관이나 대기업 회장들 정도만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던 시절이었다. 나는 기사를 따라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겨우 한 사람 빠져나갈 수 있는 비좁은 골목 끝에 있는 낡은 일본식 목조집인 우리 집 앞으로는 차가 올 수 없었다. 큰길 쪽에 햇빛을 퉁기면서 검은 승용차가 서 있었다. 나를 태운 차는 한강변을 달려 동빙고동의 어느 3층 저택 앞에 섰다. 친구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네가 사는 집 맞니? 집이 뭐 이렇게 커?”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렇게 화려한 저택을 처음 보았다.

“맞아 우리 집이야. 구경시켜줄께, 우리 집에 ‘홈 바’도 있다.”
그가 나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홈바’가 뭔데?”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는데 벽에 별별 양주가 다 있어.”

그가 나를 넓은 지하실로 안내했다. 바가 보이고 유럽식의 실내장식장이 벽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고 양주병들이 꽉 차 있었다. 이어서 그가 나를 그 집에 있는 아버지 서재로 데리고 갔다.

“여기는 우리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방이야. 우리 둘만 몰래 들어온 거야. 이 방에는 에어컨이라는 게 있어. 여름에도 시원한 공기가 나오는 기계야.”

그 시절 우리 집에 검은색의 다이얼 전화가 가설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에어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나는 창문에 설치되어 있는 철상자 같은 에어컨을 처음 보았다. 여름을 겨울로 만들어 주는 기계였다. 그가 묵직한 목재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서류뭉치를 보여주면서 내게 자랑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대통령 때도 경제장관을 했어. 이승만 대통령 때 경제개발계획을 세우셨는데 막상 실행은 박정희 대통령 때 했어. 지금은 장관 그만두고 그룹 회장을 하고 있어.”

나는 고관이고 부잣집 아들인 그와 친구로 어울릴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컸다. 집안에서 먹으라고 내오는 아이스크림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도시락 바꿔먹자.”
그가 제의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식은 밥 덩어리에 시어빠진 김치조각만 있는 초라한 양은 도시락이었다. 그는 자기 도시락을 내게 주고 내 걸 뺏어 가더니 김치를 밥 가운데 놓고 다시 뚜껑을 닫고 막 흔들었다. 김치비빔밥을 만든 것이다. 다시 뚜껑을 열더니 그걸 내 앞에서 다 먹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후 그의 집에 자주 놀러가고 그해 여름 둘이서 대구 부산을 거치는 전국 여행을 함께 했다.

그는 공부도 잘했다. 서울대에 바로 들어가고 졸업 무렵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엘리트 부서인 경제기획원에 들어갔다. 그룹 회장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제기획원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가 됐다. 그가 잘해줘도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거리감을 느꼈다. 워낙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이면 통속소설에 나오듯 그는 천방지축에 교만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소리 없이 도와주는 스타일이었다. 삼십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어도 일 년에 몇 번쯤은 만났다. 한번은 둘이 있을 때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의식화되어 운동권으로 나갈 것 같은 성향의 너를 내가 순화시킨 면이 있지. 너는 있는 집 아들한테 편견을 가질 가능성이 다분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속은 섬뜩했었다.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가 고교 시절부터 그만큼 사회적으로 성숙했다는 뜻이다. 그가 덧붙였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는 자랄 수가 없는 게 나의 입장이야. 나 자신 그 자체로 살아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누구의 아들로 되어 버리는 거야. 그게 또한 내 운명이야.”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그는 승진해서 예산처의 국장이 되고 나는 변호사로 노숙자 단체에 관여하고 있었다. 몇 명이 돈을 내서 노숙자들에게 잠자리와 밥을 주는 일이었다. 예산국장이던 그가 내가 하는 일을 알자 이리저리 뛰면서 정부지원금을 받게 해 주었다. 고교시절 친구라는 인연으로 특혜를 본 셈이었다. 그는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재벌 그룹의 부회장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하고 소식이 끊겼다.

몇 년이 흘렀다. 외국에 나가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바람결에 그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동안 세상적인 환경의 차이 때문에 거리를 두었던 내가 다가설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반가와 하면서도 왠지 그의 목소리에는 그늘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두 번 세 번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겨우 약속이 잡혔다. 영하 십도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던 날 점심시간 강남의 작은 한정식 집 방 안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놀랄 정도로 마르고 늙어 있었다. 팽팽하던 얼굴에 밭고랑 같은 주름이 생기고 피부도 까맣게 변했다. 그가 그동안의 사정을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는 내가 미국에 간다고 하고 연락을 끊었었는데 사실은 내가 간암에 걸려 일곱 번이나 수술을 했어. 자식들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서 검사를 했더니 맞지가 않는다는 거야. 장기의 기증자가 나타나도 내 순번이 다가와 이식수술을 받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말이야. 삶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갔었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자기 간을 떼 주겠다는 청년이 나타났어. 그 청년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거지. 그 청년이 자기 간의 3분의 1쯤만 남기고 나머지 3분지 2는 잘라서 내게 줬어. 둘이서 열두 시간 수술대에 누워 간을 나눈 거지”

“어떻게 그런 천사가 있을 수 있어? 이해가 안 되네. 비싼 가격으로 불법 장기매매를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도대체 어떤 관계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됐어?”

“예전에 남 모르게 그 집안을 도와준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 집안에서 내가 죽어가고 있는 사실을 안 거야. 그 집 가족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아들인 청년이 자원을 한 거야.”

평소 주변에 덕을 베푸는 그의 선행이 생명을 얻게 한 것 같았다. 인생의 이치를 직접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살아나서 본 세상은 어때?”
내가 물었다.

“다시 살아나니까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어. 돈 명예 지위 이런 것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정치권에서 다음 대권을 차지하겠다고 바쁜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같단 말이야.”

그는 한 차원 높은 다른 세계로 간 것 같았다. 이제는 살아있는 그에게 내가 감사인사를 할 차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모로 정말 감사했어. 가난한 집 아들로 편견이나 가진 사람에 대해 삐딱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된 건 너 같은 푸근한 친구 때문이었어. 어려서부터 많이 얻어먹고 신세졌는데 고맙다고 한 적이 없네. 지금도 네가 많겠지만 앞으로는 나도 맛있는 걸 살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뭐를 하든 진심으로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야.”

“아이고 무슨 말씀을, 밥을 누가 사든 그게 무슨 문제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감동받은 게 더 많은데 뭘.”

그의 대답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영하의 날씨가 전혀 춥지 않았다. 마음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따듯한 봄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