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를 드니 청소부라 부르고 톱 망치를 드니 목수라 하네. 수도(修道)를 하고 보니 도인이라 부르더니 세상을 앞서가면 미쳤다고 하더이다.' 道 人

거리의 변호사로 뒷골목에 앉아 있으면서 한 가지 호기심이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거리를 흘러가는 사람 중에 도인(道人)이 있을 거라는 기대라고 할까. 톨스토이의 글을 보면 천사가 벌거벗은 불쌍한 인간이 되어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하철 계단에서 성경을 앞에 놓고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줄을 쳐가면서 읽는 노숙자도 있다. 걸인(乞人)과 도인(道人)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아닐까. 무료급식소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시골농부 같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큰 입에 고르지 않은 치열이 그의 자라난 힘든 환경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막노동자예요. 새벽 다섯 시 성남의 노동시장에 나가 시다를 구하는 봉고차에 타고 공사장에 가면 쓰레기를 치워주고 청소를 하는 제일 하급의 일용잡부죠.”

“어떤 때가 힘드세요?”
“내가 나이가 환갑 진갑이 넘었는데도 감독이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대하니 힘들기보다는 좀 씁쓸하죠. 젊어서 태백산의 절에 들어가 수행을 하다가 나와 막노동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어요. 다른 게 있다면 시(詩)를 좀 썼다고 할까.”

그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스님에게 시집 몇 권을 건네주었다. 젊은 시절 태백산의 절에서 같이 일하면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스님이 내게 그 시집 한 권을 주었다. 그와 스쳐 지나가는 잠시 만났다가 헤어졌다. 늦은 밤 그에게서 받은 시집을 들췄다. 표지 이면에 적힌 이런 글로 시작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허황된 우문을 밝히려는 이십 오년 지난 세월 삶이 이 한 권의 책으로서 덧없던 것만은 아니었네. 지난시절 매 시절은 세상사에 갇힌 삶이요 지금 이 시절은 삶에 속한 세상사요.’

관념이 아닌 몸으로 얻은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시집을 계속 들추고 있었다. 독특한 그의 시들이 나오고 있었다.

‘빗자루를 드니 청소부라 부르고 톱 망치를 드니 목수라 하네. 하는 일 없고 보니 백수라고 하더이다. 수도를 하고 보니 도인이라 부르더니 세상을 앞서가면 미쳤다고 하더이다. 허어 이 사람들 다 뉜고.’

그 다음에 눈에 띄는 ‘애쓰지 마소’라는 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보게 더 배우려 하지 마소 더 배운들 뭣하겠나. 더 얻으려 하지 마소 더 얻은들 어디 두나 있는 것도 다 못 쓰면서. 이보게 더 살려고 하지 마소 더 산다고 달라지나 애쓰지 마소. 하고저 다 된다면 뭔 재미가 있겠나.’

그의 시가 점차 본질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았다. ‘법’이라는 시는 이랬다.

‘놓은 법은 놓으라는 법이 아니라 놓으려는 법을 놓으라는 것이라오. 잊는 법은 잊으라는 법이 아니라 잊으려는 법을 잊으라는 것이라오. 단순하고 간단함이 어려운 것은 생각으로 헤아리니 혼잡스럽고 생각으로 보려 하니 보고도 못 본다오. 한 걸음 물어나 바로 보는 그 자린데.’

그는 세상에 대해서도 ‘실종신고’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한 마디 일갈했다.

‘원칙이 있다한들 자신은 예외 두니 원칙이 실종됐네. 전문가 어디 가고 전문직 도둑 되어 전문가 누구인가’

나 같은 변호사들을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는 ‘도(道)’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자연 그대로가 자연이요 너 있는 너대로가 아름답고 나 있는 이대로가 꾸밈없으니 굳이 도(道)라고 할 것도 없소’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시귀들이 계속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풀잎들은 나보고 잡초처럼 살라하네 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저 산들이 나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그래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들꽃들도 나보고 소박하게 살라하네 그래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사는 곳 묻지 마오 가는 곳 알려마소 머문 곳 여기에다 짐을 푼 나그네요’

그의 시집 마지막은 ‘냅둬요’라는 제목의 이런 시였다.

‘너를 보는 날 모르고 나를 보는 널 모른 채 너를 본들 내가 알고 나를 본들 네가 알랴. 내 비록 초라하게 보여도 초라하지 않으며 조그마케 보여도 조그마치 않으니 모진 바람 불어도 흔들림이 없다오.’

그는 진흙탕 속에서 활짝 핀 연꽃 같은 도인인지도 모른다.




[출처] 道人|작성자 엄상익